은총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밝힌 것처럼 성사 밖에서도 주어진다. 따라서 성사가 은총을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성사 밖에서 주어지는 은총과 다른 어떤 새로운 은총을 준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은총의 작용이라는 면에서 알아들어야 할 내용이다. 성사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각 성사마다 고유한 효과가 있으리라고 보아야 하고 그 고유한 효과라는 것이 고유한 은총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은총을 준다는 것을 은총의 작용이라는 측면에서 알아들어야 마땅한 것이다. 사실 각 성사는 서로 다른 상징인 까닭에 성사마다 부여하는 은총은 그 작용에 있어서도 다르다. 그러므로 일반 은총과 다른 성사 은총의 면모를 은총의 작용이라는 측면에서 정리해 보겠다.
성사 밖에서도 존재
신약성서를 보면 세례와 주의 만찬의 효과를 특징짓는 일련의 상징적인 표현들이 발견된다. 세례는 수세자를 『이름』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 존재(사도 2, 38; 8, 16; 19, 5; 1 고린 13, 16; 마태 28, 29참조)와 역동적으로 연결시켜 자리매김한다. 즉 수세자를 예수님의 죽음(로마 6, 3)과 매장(로마 6, 4; 골로 2, 12)에 참여하게 하고 죄의 용서와 성령의 선물(사도 2, 38)을 주는 것은 물론이요 『세정』과 『성화』(1고린 6, 11)를 이루게 하며 그리스도의 교회적인 몸에 합치시키고(1고린 12, 13) 새로운 탄생으로 인도하며(요한 3, 7; 디도 3, 5참조)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요한 3, 5). 주님의 만찬은 식사를 함께 한 모든 이들을 『한 몸』이 되게 하고(1고린 10, 17)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케 하며(1고린 10, 16) 영적 배고픔과 목마름으로부터 해방시키고(요한 6, 35) 예수님과 그리고 함께 하는 이들과 지속적인 일치를 이루게 하며(요한 6, 56) 『생명』을 주고 (요한 6, 35ㆍ53)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가능하게 한다(요한 6, 54). 여타의 의식들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죄인에게 발해진 『자유롭게 해주는 말』이라든지 원로들이 행하는 안수가 그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죄의 사함을 전달한다(요한 20, 23). 말하자면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을 주는 것이다(2디모 1, 6).
트렌트 공의회가 성사들의 효과를 『의화』를 베풂 곧 『은총』을 베풂 정도로 축소시켜 교리화한 것은 성서의 풍부한 상징체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탓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스콜라 신학이 성사는 배령자에게 『성화은총』을 베푼다는 정도로 언급하고 말았던 것도 성사를 대단히 협의로 이해한 것이자 추상적으로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목적에 알맞는 은총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미 가르친 바 있듯이 하나 하나가 『은총의 방법』인 성사들은 각각 특별한 목적을 갖고 있는 그대로 차이가 있는 『성사 은총들』을 베푼다. 그 성사 은총들은 인간의 실존적 발전에 깊게 관련되어 있다. 트렌트 공의회가 비록 은총의 실존적인 효과문제를 충분히 숙고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제7회기의 선언문 서언에서 밝힌 성사를 통해서 『모든 참된 의화가 시작되거나 자라거나 하고 그 의화를 상실한 후에도 다시 회복된다』고 한 표현은 인간의 발전에 성사의 효과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사실 현대의 신학자들 가운데 스킬레벡쓰같은 이들이 실존적 인간학의 관점에서 은총이 우리 인간의 삶 안에서 역사가 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한, 성사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진보적인 사고를 해나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표현을 지도원리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성사 은총을 성화은총 정도로 알아들은 일은 아니다. 분명히 서로 다른 은총의 작용이 있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설명해 준 것처럼 세례와 견진의 은총을 예로써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첫째 두 성사의 은총의 직접적인 원인인 인호가 서로 다르므로 결과도 다르고 둘째, 두 성사의 목적이 치유에 있는데 그 치유를 필요로 하는 결함이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세례의 은총은 그리스도교적 삶에 있어서 성화의 정상적인 삶을 방해하는 결함을 치유하고 견진의 은총은 비겁함을 극복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필요한 용기를 저해하는 결함을 치유하는 작용을 한다.
요컨대 성사 은총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인간의 실존적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과 만남으로써 참 인간이 되게 하는 힘이다. 그 힘이 성화은총과 덕행 그리고 성령의 은혜를 보완하는 일 즉 죄에서 연유한 상처와 결함을 치유하는 일을 함으로써 인간의 인격적 완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 은총들이야말로 바로 하느님의 선물들이다.
인격적 완성 가능케
그래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도 그리스도론적이고 교회론적인 차원에서 『성사 은총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의 은총이며 각 성사에 고유한 것이고 성령께서는 성사를 받는 사람들을 성사와 일치시킴으로써 치유하고 변화시키신다. 성사의 효과는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성령께서 신자들을 외아들이신 구세주와 근본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1129항)라고 하는 일치를 중심으로 한 성사 은총 즉 성사의 효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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