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카 민호는 만 여섯 살이다. 나는 이 아이가 18개월 때부터 그린 그림들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그의 그림은 선에서부터 원, 네모, 사람형태, 물건, 동물, 식물, 감정 이입의 그림, 이야기 꾸미기, 가면, 만화만들기까지 발전했다.
민호는 미술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그 아이는 하루에 몇 차례씩 놀라운 집중력으로 그림 그리는데 몰두한다. 자기의 생각이나 인상을 종이 위에 옮기며 칭찬을 받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민호는 화가 나도 그림을 그리는데 그의 감정이 그림에 확연히 나타난다.
민호가 가장 즐겨 그리는 것은 여러 종류의 동물과 곤충인데, 그는 각각의 이름을 알 뿐 아니라 몇 개의 선으로 대상의 특징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나는 그 아이의 관찰력과 표현력에 자주 놀라고 부끄러워진다. 누군가가 나에게 고양이를 그려 보라고 한다면, 나는 자신있게 그리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사물과 생명체에 대한 애정과 관찰력이 없다는 증거이다. 또한 내가 받아왔던 미술교육에도 문제점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모든 인간은 예술적 정서와 창의력을 지니고 태어났음을 믿는다. 음악, 춤, 글쓰기. 그림은 인간의 근본적인 표현 욕구에 속한다. 창의력과 표현력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교육과 문화적 여건에 의해서 누구에게나 계발되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에 있어서 교육적 자세로는 무엇보다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에게 자유스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동그라미만을 그릴 수 있는 아이에게 귀와 눈썹을 그리라거나, 대상에만 관심이 있는 시기의 아이에게 배경색을 칠하라고 하는 것은 간섭의 차원을 넘어 아이의 능력에 부담을 주어, 아이가 결국은 그림 그리는 것에 싫증을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해 아이의 표현력은 움츠려 들며 잠재된 창의력은 억눌린 상태로 남아 있기 쉽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의 창의력을 개발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박물관이나 전시회에서 좋은 그림들을 자주 볼 수 있게 하고, 많이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며, 무엇보다도 자연을 만나고 느끼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부모와 함께 자주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은 결코 정서적 문제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삶은 움직이며 열려있는 화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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