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3월1일자
『서울 민 대주교께옵서는 1월21일에 교서를 발하사 경성교구에 속하얏든 황해도를 분활하야 감목대리 지방으로 설정하고 장연읍 본당 베드루 김 신부(조선 신부)를 감목대리로 임명하사 이 자방을 다사리게 하섯더라』. 1928년 4월1일로 창간 1주년을 바라보는 천주교회보는 그해 3월호 소식난에「황해도 교구대리」감목임명 기사를 주요기사로 실었다.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감목대리가 탄생한 것은 이때가 처음. 1928년 서울교구의 감목인 뮈뗄(Mutel민덕효)주교는 서울 대목구에 속하는 황해도를 감목대리구로 설정하는 동시에 황해도 장연(長淵)본당의 김명제(金命濟ㆍ베드로)신부를 초대 감목대리로 임명한 것이다.
이 기쁜소식은 3월1일자 천주교회보의 1면 머리기사를 김 신부의 사진과 함께 장식하고 있다. 현재의 사설과도 같은 성격의 이 지면은「최초의 조선인 감목대리를 마지하면서」제목하에 황해도 감목대리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경축하고 있다.
『황해도가 감목대리 지방으로 설정되고 그 최초의 장(감목대리)으로 동족 베드루 김 신부가 임명되사 교구를 다사리게 되섯도다. 이 깃븐 소식을 드른 조선 십여만 교형제는 다가티 환희용약하며 만공의 정성으로 축하하리로다. <중략> 반도 십만 교형자매는 소래를 가티하고 힘을 합하야 성원하며 당면한 황해도 7천여 백 교형제씨는 첫 시련을 밧게 된 중한 책임을 성심껏 다하야 자치 완성과 본 감목으로 속히 실현되게 하사이다. <하략>』
황해도가 감목대리 지방으로 설정됐다는 소식은 조선교회로서는 참으로 기쁜 소식임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3월에 이어 창간 1주년을 맞는 4월1일자 천주교회보는 황해도교구의 자치 기성회 조직 소식, 황해도교구 교우대회를 4월27일에 개최한다고 속보(速報)하는 등 지면의 상당수를 황해도 감목대리구 설정 기사에 할애하고 있다.
그뿐인가. 그해 8월1일자 논설「황해도 교우 제씨의 분려(奮勵)를 촉함」을 통해 황해도 자치 기성회의 자립 의지를 본받도록 전국 신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황해도는 끝내 교구로 승격되지 못하고 1942년 황해도 감목대리 폐지와 더불어 김 신부도 감목대리의 직책에서 물러나고 만다. 1백여 년 간의 대 박해, 그리고 일제의 압박속에서 면면히 이어온 조선의 교회, 특별히 북녘의 황해도교회는 1945년,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침잠의 세계로 빠지고 만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오늘, 부활절과 함께 날아든 소식 하나가 우리의 잠자는 희망을 일깨우고 있다. 칼날과 같은 첨예한 대립속에서도 남 북, 그리고 해외 동포신자들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함께 지향하며 봉헌한 부활절 미사 소식이 바로 그것.
물론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엄청난 시련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긴 부활의 신비가 꽁꽁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녹여줄 날을 함께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 그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편집자 주=기사의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인용문에서는 그 때 당시 통용되던 한글 철자와 맞춤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사오니 독자 여러분의 양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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