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정원이 있는 조그마한 집에 장님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정원에서 보내며 자기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꽃과 나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봄, 여름 그리고 가을 내내 그 집은 꽃의 바다를 이루었다.
어느날 그 집을 지나가던 한 사람이 정원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고는 『어찌하여 당신은 이 일을 합니까? 당신은 한 송이의 꽃도 볼 수 없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장님은 『그렇소. 전혀 볼 수 없지요』하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당신을 정원을 가꾸고 있습니까?』. 장님은 미소를 띄우며 대답하기를 『그 이유를 네 가지 들겠소. 첫째, 나는 정원을 사랑합니다. 둘째, 나는 꽃들을 만져볼 수 있습니다. 셋째로는 꽃향기를 맡을 수 있지요. 마지막 이유는 당신 때문입니다』. 『저 때문이라구요? 그렇지만 당신은 저를 전혀 알지 못하지 않소!』 『모르지요. 그러나 나는 당신이 언젠가 이 곳을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당신은 이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기뻐할 것이며, 나는 당신과 이 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니까요』
「장님의 꽃」이라는 제목의 이 짧은 글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장애의 의미, 생명을 느끼는 마음, 자신을 받아들이고 가꾸는 생활, 그리하여 남에게 열려 있는 눈, 장애인에 대한 인식, 일의 의미,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남, 장애인의 재활 희망, 감각기관이 병들어 가는 현대인의 장애 등등.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좌뇌ㆍ우뇌를 계발시키는 영재교육의 유치원」이라는 광고를 붙여 아이들을 태우고 달리는 봉고차를 본다. 꽃도 나무도 아름다운 건축물 하나도 찾아보기 힘든 이 도시와 현란한 유치원 봉고차에 탄 아이들은 마치 연극속의 한 풍경처럼 보인다.
우울한 연극! 그 연극을 준비한 교사와 부모들을 만나고 싶고 그 유치원을 방문하고 싶다. 그 곳에는 어린이의 정신과 영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좌뇌ㆍ우뇌 유치원에는 장애어린이를 어떻게 받아 들일까? 혹시 그곳은 어린이들을 후천적 장애아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어린이들을 물적(物的)인 존재로 만들어 가는 유치원을 짓기 보다는, 그 곳에 장님이 가꾸는 정원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은 매일 꽃 가꾸는 것을 배우며 지혜의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손과 발에 검은 흙이 가득 묻은 어린이들의 건강한 웃음이 있는 곳에서, 우리는 교육이라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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