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사의 제정성 문제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일곱 가지 성사들을 세우셨다는 것을 대단히 강한 어조로 밝혔다(덴징어 1601). 그 후 칠성사의 그리스도 제정성에 관한 교회의 입장은 바로 그 트렌트 공의회의 표명을 반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1564년도 비오 4세의 신앙고백인 Injunctum Nobis(덴징어 1864)도 그랬고 비오 10세께서 1907년에 근대주의를 단죄하면서 반포하신 Lamentabili의 조목들(덴징어 3439-3441)과 비오 12세께서 1947년에 반포하신 Sacramentum Ordinis의 신품성사의 질료와 형상에 관한 내용(덴징어 3857)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많은 신학자들은 트렌트 공의회의 표현 그 자체가 칠성사의 그리스도 직접 제정성을 말하기 위한 것으로 알아들었다. 실제로 트렌트 공의회는 차후에 치루어진 회기들을 통해서도 성사들의 그리스도 제정성을 반복했었기 때문이다(덴징어 1636, 1668, 1694).
그러나 서로 다른 견해를 피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들은 트렌트 공의회의 의도는 일단 일부 성사가 사도들이나 교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개혁주의자들의 오류(덴징어 1716, 1718)를 지적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고 비오 10세의 문헌 역시 일부 성사의 그리스도 간접 제정성을 주장하는 근대주의자들의 오류를 집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직접 제정성 문제보다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제정성 그 자체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칠성사를 직접 제정하셨다고 확신하고 있기에 교리로써 가르치고 있고 신학도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교회의 확신이나 신학의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충실성이 그리스도께서 현재 교회 안에서 거행되는 성사들의 형식을 갖춘 의식 그대로를 하나도 틀림없이 그대로 행하도록 제정하셨다는 것에 대한 그러한 식의 것은 아니다. 성서 본문에 대한 신학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연구는 분명히 오늘날 교회 안에서 거행되고 있는 성사들의 형식을 갖춘 의식 그대로를 그리스도께서 직접 구체적으로 제정하셨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칠성사의 그리스도 제정성은 과연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 것인가? 아니 그리스도의 직접 제정성에 대한 교리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우선 교회론적인 방법으로 넓게 알아들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상에서 활동하실 때 한편으로는 지금의 교회처럼 조직화된 구조라든지 교리라든지 교회법 등을 갖춘 교회공동체를 직접 그대로 세우신 적이 없다. 성사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한 가지 성사조차 예수께서 지상 활동 중에 설정하셨다고 명시적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오늘날 우리가 속해있는 교회의 근원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찬가지로 성사의 기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근원이시라고 할 때 그 근거가 그분이 당신 스스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와 그 나라를 위해 당신을 추종하도록 제자들을 부르심에 있다. 그러므로 성사 역시 그분에게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할 때의 근거는 그분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와 그 나라를 위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공동체인 교회라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다음은 그리스도론적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요한복음사가와 그 계통의 문헌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 즉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로고스께서 계획을 지니신 채로 하늘로부터 파견되어 오셨다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그리스도론적인 입장을 인정한다면 쉽게 해결된다. 사람이 되신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 곧 충만한 성사의 생활이 있는 교회를 생각하고 계셨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예수께서 공관 복음서들이 말해 주고 있는 것 이상으로 명백하게 결정하셨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예수께서는 당신이 교회를 원하셨던 그 정도로 성사들을 원하셨다』는 거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칠성사의 그리스도 제정성을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것이 오늘날 교회와 신학의 경향이다. 교회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을 통해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사』로서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와 전 인류의 깊은 일치를 표시하고 이루어 주는 표지요 도구』(교회헌장 1항) 즉 『일치의 볼 수 있는 성사』(교회헌장 9항)라고 규정하면서 그 제정의 작인을 하느님이시라고 말하는 가운데(교회헌장 9항) 칠성사를 통해서 그 구체적인 일치를 실현한다고 말함으로써 (교회헌장 11항) 그리스도의 성사제정에 관한 가르침을 교회론적이고 그리스도론적인 방법으로 폭 넓게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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