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식사를 함께 하면서 상대방을 개의치 않고 정식으로 기도를 한 적이 드문 것 같아요. 간혹 상대방이 신자여서 성호를 긋는 경우, 대충 성호만을 따라 긋고 아니면 아예 기도를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김진국(대건 안드레아ㆍ32세)씨는 얼마 전 대학동기 모임에서 4명의 신자 친구 중 식사 때 기도를 하는 친구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봤지만 단 한 사람도 식사 전 기도를 하는 이가 없어 무척 놀랐다고 설명한다.
성당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갈 때는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공동으로 식사 전 기도를 바치거나 아니면 개별적으로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지만 일반 친구를 만났을 때는 기도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김진국씨.
실제로 많은 신자들 중에는 김진국씨처럼 식당이나 기타 모임 장소에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바치는 신자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 중 가톨릭 신자가 가장 기도할 줄 모른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말로써 하는 기도가 아닌 성호를 긋는 기도조차 제대로 바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일선 사목자들은 한결같이 지적한다.
심지어 어떤 신자들은 어느 모임에서 식사 전 기도를 주송하라고 지명당하자 식사 전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경험을 했다고 전한다. 거창한 기도를 하라는 주문도 아니고 간단한 식사 전 기도만을 하라는 요청에도 이처럼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신자들의 모습이 기도생활에 익숙치 않은 한국교회 많은 신자들의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인천 간석동본당의 이지민(안젤라ㆍ27)씨의 경우 「어떤 모임에서든 의식적으로 성호를 긋고 마음속으로나마 간단한 기도를 빼놓지 않고 바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 기도를 통해 스스로 신앙인임을 밝힐 수 있어 좋고,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친구들을 가톨릭에 호감을 갖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보란듯이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런 이지민씨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매사를 살아가는 신자수는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이며 기도한다는 것은 신자의 표시라고 배워왔다. 더욱이 성호경은 입과 손과 마음, 즉 자신의 온 존재로서 신앙의 근원인 삼위일체의 신비를 고백하고 구원의 도구인 십자가를 표시하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면서 은총을 비는 기도라고 지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믿음의 표현으로서 믿는 사람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할 이 기도가 잘 행해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신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십자성호를 긋는 행위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길 이유가 없이 남을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고 일선 사목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신자들 중에도 간혹 개신교 신자들이 식당에서도 열심히, 그리고 진지한 기도모습에 놀라울 때가 많았다고 하지만 가톨릭 신자들의 기도 모습에서 그들과 같은 진지함을 찾아보지는 못했다고 전한다.
가톨릭 신자들의 이러한 기도습관과 태도가 생활화 돼 있지 못한 원인에 대해 일선 사목자들은 우선 기도하는 습관의 부족과 공식적인 틀에 얽매인 신앙생활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신앙생활로 고착화된 신자의식이 제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죄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으며 이제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심을 알리는 표징」인 이십자성호를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올바르게 그을 수 있을 때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신자로서의 요건을 갖추게 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어릴 적부터 기도가 생활화돼야 하는데도 많은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춤이나 노래는 열심히 가르칠려고 온갖 애를 기울이면서도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하는 방법은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일선 사목자들은 지적했다.
또한 신자들이 성호긋기를 두려워하는 원인으로는 신앙생활에 대한 자신이 없음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결과로도 지적된다.
따라서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고 그러한 삶의 진실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십자성호를 당당히 긋는 그런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십자가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형언할 수 없는 사랑과 무한한 자비의 증거이고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하느님의 힘의 상징을 나타낸다.
이처럼 십자가가 우리 신앙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십자성호를 그을 때의 우리의 마음자세도 보다 신중하고 경건해야 한다.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깨달아 진정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행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주 반복되는 행위는 쉽게 기계적으로 습관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습성에 물들지 않도록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더불어 십자성호를 그을 때마다 세례 때 고백한 신앙을 새삼 기억하고 새롭게 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십자성호는 그 자체로서 가장 간결하면서도 그리스도 신앙을 대변해 주는 신앙고백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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