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줄을 갓 넘긴 김수홍(가명)씨는 지금 6년째 성당을 찾지 않고 있다. 소위 말하는 「냉담」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엉뚱하다. 『흔히 교회에서 말하는 냉담은 당장 미사에 안가고 성당활동 안하는 것을 말하지요. 전 생각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보고 냉담중이라지만 제 마음속엔 저 나름대로의 신앙이 있습니다. 한데 매주는 아니지만 미사에 갔다오면 더욱 혼란스러워져서 다음엔 나가기가 싫어집니다』.
어렵게 인터뷰 승낙을 받고 찾아간 김씨는 여전히 말하기를 꺼려하는 눈치다. 김씨는 태어날때부터 장애인이다.
『한번은 신자들과 길을 가다가 구걸을 하는 장애인을 봤어요. 무심코 그냥 지나치더군요. 그러더니 「뭘 믿고 저런 사람을 도와주느냐」는둥 「다른 곳은 멀쩡한 사람이 게을러서 저렇다」는둥 말을 하는 겁니다. 제가 곁에 있다는걸 그제서야 느꼈는지 당황스럽게 말을 멈추더군요』.
그러나 이것이 그의 냉담이유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계속되는 질문에 속시원히 털어놓아 보자는듯 자리를 고쳐 앉는다.
『제가 방금 얘기한 그런 경우에서 보듯이 우리 신자라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살아가는 모습이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뭐가 있습니까. 성당에 나와서 미사참례하고, 싫은 사람이라도 눈한번 질끈 감고 인사하면 그만이지요. 또 어울리는 사람들은 매번 자기네들끼리만 모입니다. 그리고는 성당에서 자기네들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양 속된 말로 거드름을 피우거든요』.
공동체라고 누누이 강조하는 신자들 간에 왜 상하조직과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항변이었다.
86년 영세한 그는 사실 장애인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려 선뜻 교리반에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위의 권유로 어렵게 세례를 받은 그는 얼마되지 않아 첫 인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신자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사목위원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똑같았어요. 많이 배우고 성당에 대해서 더 잘 알고 더 많이 안다고 그러는지 다른 사람들의 말은 귀담아 듣질 않아요. 성당이 어디 사목위원들처럼 학식 있고 잘 사는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겁니까. 3분의 2이상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 아닙니까. 신부님도 어쩔 수 없이 몇몇 사람들의 말에 따를 수 밖에 없더군요』.
한번은 성당내부 보수공사 일로 사목위원과 건축 기술자 등 신자들 중 관계되는 몇 사람 모였다. 창문을 다는 일이 김씨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려는 단계에서 다른 곳에 일이 맡겨졌다. 사전에 상의한 바도 없고 이런 저런 사정을 전해들은 바도 없었다.
몹시 마음이 상한 김씨는 사목위원 중 누군가가 자기 거래처 사람에게 그 일을 맡겼다는 사실을 뒤에 알게됐다. 『처음부터 제가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고 본당에서 저의 기술을 믿고 맡겨준 것이니 최선을 다해보려 했습니다. 물론 공사가 끝나면 공사비는 모두 제가 성당에 봉헌한 것으로 할 생각이었습니다. 한데 사람을 그렇게 무시할 수가 있습니까』.
김씨는 공사대금으로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이 지출된 사실을 뒤에 알고는 더욱 상심했다고 한다. 『비단 이런 경우뿐만 아니라 성당이 마치 장사꾼들의 영업장처럼 보일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신자들 간에 격의 없는 대화와 친교, 한 형제 자매로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사와 나눔을 찾을 수가 없어 안타깝다고 김씨는 덧붙인다.
『신부님의 강론을 들어도 답답할때가 많습니다. 신자들은 한 주일을 세상 안에서 정말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러다 성당에 와서 전례에 참여하면서 또한 주일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이것이 바른 삶이고 참된 삶이란 것을 확인하고 그렇게 살 수 있는 방법과 힘을 얻어가야 하잖아요.
한데 성서구절만 갖고 원론적인 말씀만 한다거나 아니면 성당운영에 어려움이 있다고 돈 얘기만 늘어놓으면 참 맥이 빠집니다. 신부님들도 돈 얘기 하는 것이 가장 싫다고 하더군요. 어쩔 수 없는 경우겠지요. 하지만 신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서 양식을 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는 달라져야 합니다. 성직자들도 그렇지만 우선 신자들도 세상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말만 갖고 전교해봐야 저같은 사람만 자꾸 생겨요』. 김씨의 사례를 보면서 점차 세속화 되어가는 교회의 딜레마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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