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동방의 유럽」이라 불리는 마카오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에게 있어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김대건 신부는 1837년 6월7일부터 1842년 2월15일까지 근 5년간 머물면서 신학을 배우고 철부지 소년에서 조선 교회를 가슴에 안을 청년으로 성장했다.
중국과 포르투갈 문화가 공존하는 곳, 동서양 문화가 서로 융화돼 나름의 독창적인 문화를 표출하고 있는 마카오에서 소년 김대건은 동양의 관념으로 서양 학문을 익히며 자신을 철저하게 마카오화 했다. 그의 이러한 모습에서 「한국 최초의 르네상스인」이라는 칭호도 잘 어울릴 것이다.
김대건 신부는 아시아 지역 선교사 양성의 요람인 이 곳 마카오에서 토미즘에 기초한 세계관에 눈을 뜨고 동양적 사고방식이 아닌 서양 철학적 사고의 틀로 사물을 관조하고 사제로서 지녀야할 품성과 인격을 쌓았다.
그러나 마카오 곳곳에는 김대건 신부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흔적과 자취들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그의 자취는 마카오와 중국 본토를 연결하는 국경 관문에서 배어난다. 요즘도 이 관문을 통해 하루 약 7만여 명이 왕래하고 있다지만 1백50여 년 전에는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세관이 없어 출입국이 훨씬 자유로워졌지만 중국과 마카오 양쪽 관문에 게양돼있는 서로 다른 국기가 왠지 긴장감을 더해준다.
중국에서 마카오로 오는 유일한 육로인 이 관문으로 15세의 김대건은 동기인 최양업과 최방제와 함께 샤스탕 신부를 안내한 중국인 안내원을 따라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남하, 1837년 6월7일 마카오로 들어왔다.
아마도 열다섯 살 소년 김대건에게는 이때의 월경(越境)이 아마「목숨을 담보로 마카오로 간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중국 대륙을 종단하는 동안 김대건의 일행들은 심양, 북경, 제남, 남경, 상해, 항주를 거쳐 온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북경에서 아마도 처음으로 서양의 웅장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북당과 남당, 동당 등 여러 성당들을 둘러보았을 김대건 일행들은「사제가 되어 조선에서도 이 같은 큰 성당을 짓고 그 안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기를」간절히 기원했을 것이다.
마카오에 도착한 김대건 일행은 먼저 마카오 항구에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서양 함선들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중국 대륙을 종단하면서 수차례 조선의 배와는 비교도 안 될 큰 중국 배들을 보아왔으나 중국 배보다 몇 배나 큰 서양 함선을 보고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또 마카오 시내의 화려한 서양식 건물과 풍물들을 보고 소년 김대건은 서양에 대한 경이감을 가졌을 것이다. 또 서양학문을 배워 잠자고 있는 조국 조선을 깨워야 한다는 개화사상도 소년 김대건은 마카오를 보면서 조금씩 키워나갔을 것이다.
마카오에 도착한 김대건 일행은 파리외방전교회가 운영하는 동양인 성직자 양성소인 페낭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당시 이 신학교에서 중국인 신학생들이 소요를 일으키는 등 면학 분위기가 좋지 않아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은 파리외방전교회 동양 대표부에서 김대건과 최양업, 최방제 등 조선인 신학생들만 따로 모아 특별히 교육시켰다. 아마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게도 조선인 신학생들이 매우 특별한 존재였던 모양이다.
기자는 마카오 교회사학자인 데세라 신부를 통해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페낭신학교」자리를 확인하려 했으나 때마침 고령으로 데세라 신부가 입원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만 했다.
하지만 김대건과 그의 동기들이 따로 신학교육을 받았던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동양 대표부 자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바로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 옛 대표부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지만 소년 김대건과 최양업, 최방제가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하기에는 충분했다.
별로 크지 않은 집무실에서 중국 복장을 한 조선인 세 소년이 푸른 눈을 한 서양 신부와 마주앉아 생전 처음 듣는 라틴어를 배우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옛 파리외방전교회 대표부 자리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카모에스 공원」과 왼편 길 건너에는「성 안토니오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카모에스 공원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시성을 기념해 1985년 10월4일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 주교단과 순례단 1백여 명 참석해 제막한 김대건 신부 동상이 서 있다.
파리외방전교회 대표부와 20여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카모에스 공원은 소년 김대건과 그의 동기들이 즐겨 산책했던 곳으로 짐작된다.
신학생의 신분으로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기에 김대건과 동기들은 바로 카모에스 공원에서 산책을 하면서 잠시 고향 생각에 젖어들곤 했을 것이다.
조각가 고 김세중씨가 제작한 카모에스 공원의 김대건 신부 동상은 제막 당시의 위치에서 현재 약 15미터 앞으로 옮겨져 있다. 동상 뒤편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경관이 나빠지자 1992년 홍콩 주재 한국인 특파원들이 마카오 총독을 방문해 김 신부 동상 이전을 건의,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곳 김대건 신부 동상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김 신부의 약력이 소개된 현판의 페인트가 지워져 있는가 하면 그 위에 한국인 순례자들이 사인펜으로 덧칠을 한 것이 빗물에 씻겨 얼룩져 더욱 초라하게 보였다. 국내에서도 제대로 현양되지 못하시더니 해외에서조차 후손들의 관심 부족으로 김대건 신부가 홀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파리외방전교회 대표부 자리에서 왼편으로 15미터쯤 떨어져 있는 성 안토니오 성당에는 중앙 제대 밑에 김대건 신부의 손가락 유해가 모셔져 있다. 성 안토니오 성당은 매 주일마다 대리석 문을 열고 김대건 신부 유해를 현시한 채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또한 제대 왼편에는 홍콩 한인신자 공동체가 94년 7월에 봉헌한 김대건 신부 목각 전신상이 모셔져 있고 많은 마카오인들과 순례객들이 김대건 신부 목각상에 초를 봉헌하며 전구하고 있다.
교회사학자들은 성 안토니오 성당과 관련 신학생이던 김대건이 매 주일 이 곳 미사에 참례했다는 일부 의견에 부정적 입장을 밝히고『당시 예수회와 파리외방전교회가 친숙하지 않았던 점과 대표부 안에 성당이 있었던 점을 감안해 성 안토니오 성당을 자주 방문해 기도했을 수는 있으나 매 주일 미사를 이곳에서 참례했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정리했다.
소년 김대건의 자취가 남아있는 또 하나 마카오의 명소는 바로 성 바오로 대신학교 부속성당인「천주의 성모」성당이다. 흔히「성 바오로 성당」으로 불리는 천주의 성모 성당은 예수회가 건립한 성 바오로 대신학교 부속성당으로 성당 전면에 천지창조부터 예수 부활과 최후의 심판까지 구세사를 해설하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소년 김대건 역시 동기인 최양업과 최방제와 함께 이 성당에서 성서 내용에 대해 많은 것을 묵상하고 토론했을 것이다.
파리외방전교회 동양 대표부 자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듯이 동양 선교사 양성의 요람이었던 마카오의 옛 영화도 지금은 완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중국 문화 대혁명의 영향을 받은 마카오 현지 중국인들이 성 요셉 대신학교에 난입, 외국 선교사를 구타, 폭행하는 사례가 늘자 많은 선교사들이 떠나게 됐고 1970년부터 신학생조차 받지 못해 현재 마카오 교구는 단 한 명의 신학생도 없다고 한다.
또 1980년대 말 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붕괴되면서 중국 본토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마카오로 내려와 공산권 붕괴의 원인을 성모님의 탓으로 돌려 성모상을 파괴해 때 아닌 성상 수난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마카오를 순례하면서 김대건 신부의 자취가 제대로 보존돼 있지 않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마카오는 김대건 신부와 관련해 국내 성지 다음으로 중요한 사적지이다. 이곳에서 한국교회가 김대건 신부를 기념해 마련한 것이라고는 김대건 신부 동상뿐이다.
김 신부와 그의 동기들의 흔적들이 어느 곳에 남아있는지 연구 조사 된 바도 없다. 김대건 신부의 삶이 재조명되기 위해선 마카오 시절의 연구는 필수적이다.
현재 교회사 연구소가 발굴, 번역 작업 중인「마카오 자료집」에 김대건 신부와 동기들의 마카오생활을 증거해줄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나와 줄 것을 기대해본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