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잘 아는 소박하고 털털한 어느 신부님이 있는데 그 신부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그 신부님께 물었습니다.
“신부님의 삶을 보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배워요. 그래서 신부님을 뵈면 좋아요!”
그러자 그 신부님은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강 신부, 나는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에 들어갔어. 일반대학 다닐 때 나름 공부를 좀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신학교에서도 그렇게 공부를 하면 되는 줄 알았지. 그래서 신학교 1학년, 2학년 때 공부를 그런대로 했어. 그런데 3학년이 되니 본격적으로 신학과 철학공부를 하는데 그동안 했던 방식하고 다른 어려운 공부인 거야. 머릿속에는 온통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동료 신학생들은 나에게 ‘노심초사’라고 별명을 붙여줬어. 그런데 3학년 2학기 중간고사 때 어느 과목을 30점 받았어. 100점 만점에 30점, 한마디로 충격이었어. 충격!”
“에이, 30점. 농담이시겠죠. 신학교에 무슨 30점이 있어요?”
그러자 신부님은 웃으면서 “사실 그 과목 신부님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비슷한 점수를 주셨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에야 동료 학생들 대부분이 그 정도 점수를 받았기에 웃으며 좋은 경험 했다고 넘어가겠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안 되더라. 그렇게 30점이라는 점수를 받은 후 그만 공부에서 손을 놓고 말았어. 그런데 공부에는 손을 놓았지만 다행히 신학교에서 나무와 꽃을 가꾸는 것에 무척 큰 관심을 갖게 되었지. 그 후로 나는 작은 못자리를 만들어 꽃모종을 가꾸어 신학교 구석구석에 심기도 했고, 혼자 나무에 올라가서 나뭇가지 치는 일도 했지. 교수 신부님들이 보면 공부 안 한다고 혼내니까 안 보이는 곳에 있는 나무들의 가지를 쳤고, 나무 하나 하나를 정성껏 손보곤 했지. 그런데 그게 오히려 내가 공부를 더 잘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성적 또한 말할 것도 없이 잘 받은 거야!”
“공부만 하던 사람이 공부를 손 놓고, 나무와 꽃을 가꾸었더니 성적이 더 잘 나왔다고?”
“그래, 사실이야. 나는 당시 학문을 배운 것이 아니라 성적이 중요했고, 그것이 삶의 전부였어. 성적만이 사람의 모든 것을 판별하는 기준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그 마음 자체를 놓아버리고 자연과 친해지면서 단순하게 하루를 살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에게 솔직해지더라. 결국 자연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평온함 안에서, 성적이 주는 허망함과 불안함을 치유할 수 있었어. 자연을 배우면서 소박하고 털털해지더라. 불안, 그것을 마음에서 놓았더니 다른 모든 것들이 내 마음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체험 뭐, 말로는 설명이 잘 안돼!”
자연을 통해 자신의 불안을 씻은 어느 사제의 맑은 이야기가 주는 여운, 그것은 오랫동안 나의 기억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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