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한국 경제의 미래는 물론 우리가 열어갈 미래를 내다보게 해주는 가늠자일 뿐 아니라 시금석이다.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가 FTA와 관련해 사목자적 고뇌와 예언자적 판단을 담은 기고문을 보내왔다. 가톨릭신문은 지난주에 이어 강 주교의 기고문을 요약 소개한다.
- 미국
● 미국의 FTA 사례
76만여 개 일자리 사라지고 4만여 개 농가 갈 곳 잃어
극소수 자본가 고수익 얻을 때 중산층 무너지고 빈곤층 급증
미국에서는 나프타 체결 이후 10년 동안 전체 30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 중 6분의 1이 사라졌다. 높은 임금과 연금을 받던 제조업 노동자들이 예전에 받던 임금보다 23~77% 줄어든 새로운 일자리를 서비스부문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고, 이런 일자리에서는 연금이 거의 없었다. 나프타는 미국인의 75%를 차지하는 대학졸업 미만의 인구가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에 변화를 줌으로써 수백만 미국 가계의 경제적인 안정을 파괴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이미 2000년까지 나프타로 인해 미국에 있던 76만6000개의 일자리와 고용기회가 사라졌다.
나프타 발효 이후 생산시설을 멕시코로 이전하기가 쉬워지면서,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의 임금 및 연금 인상요구에 대해 생산시설 이전을 협박수단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특히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할 때 이런 위협은 더욱 심해졌다. 코넬대학교의 한 연구에서 400개의 노동조합 인정 캠페인을 조사했는데, 이동 가능한 산업(제조업, 통신업, 도매/유통 등)의 사업장 중 68%에서 공장 이전 협박이 있었다.
농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 정부의 연구에 따르면, 1995~2002년 사이 미국에서는 3만8310개의 농가가 사라졌고, 2000~2005년 동안 남아 있는 농가의 76%가 가계적자를 면치 못했다. 나프타가 멕시코 경제에 궤멸적 타격을 입혔을 뿐 아니라 미국 노동자와 농민들에게도 그에 필적하는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재앙’의 맞은편에는 반대급부를 챙기는 부류가 있게 마련이다. 소수 거대기업농이 세계적으로 사상 최대의 시장점유율을 장악했다. 미국의 상위 3개 기업인 카길, 아처대니얼스, 젠노는 미국 옥수수의 80% 이상을 수출했다. (이는 1990년보다 9% 올라간 것이다.) 4위권 안에 드는 닭 관련 기업이 미국 가공생산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고, 타이슨푸드는 육류포장업체인 비프아메리카와 합병해 소, 돼지, 닭 생산관련 세계 최대기업이 됐다. 또한 무역자유화로 대학 학위가 없는 미국 노동자들이 12.2%의 임금손실을 입은 사이에 미국 기업의 이윤은 1990년대에만 88% 상승했고, CEO의 보수는 463% 상승했다.
FTA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국의 경제를 활성화하려던 미국에서조차 이렇듯 극소수의 자본가들은 엄청난 고수익을 누리는 반면, 중산층이 무너지고 생활보호 대상자가 급증하면서 시민들이 월가를 점령해 1%를 위한 경제구조가 바뀌어야 함을 부르짖는 현실은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최첨단 업종인 금융업이 이룩한 최근의 행태(전통적인 여신 관리에 머물기보다는 파생상품 등을 통한 자본의 투기적 운용으로 금융시장을 교란, 왜곡하여 단기간에 거액의 수익을 올리고는 뒤로 빠지는 행태)는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세계 경제의 건전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가를 입증해 주었다.
5. 한·미 FTA 발효되면 어떤 일 일어날까?
한국 정부는 FTA를 추진하기 오래 전인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기반하여 ‘자발적 자유화 조치’라고 일컬어지는 국내법에 의한 자유화, 시장화를 추진해 왔다. 이것은 IMF 관리 사태에 들어간 상황에서 IMF가 강력히 요구한 구조조정의 방편이었다. 이후 공기업의 민영화가 꾸준히 추진됐다.
- 공기업 민영화
● 공기업 민영화의 폐단
다른 나라 사례 살펴보면 민영화 후 물·전력 등 요금 폭등
공공서비스 사유화로 인한 안정적 공급구조 해체 우려
초국적 자본은 물산업 진출에 혈안이 되어 있고, 세계 곳곳에서 물을 사유화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이미 전국 167개 지자체가 운영하던 상수도 사업을 수자원공사에 넘기는 형태(민간위탁)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미 논산, 사천, 예천, 정읍 등에서 민간위탁이 실시되고 있다. 수자원공사가 공기업이기 때문에 민간위탁은 사유화가 아니라는 논리가 있다. 그러나 FTA 논리로 보면 공기업이라 하더라도 사기업과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순간 더 이상 국가가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내국민대우 원칙 적용대상이 되면서 전면적인 사유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물산업 전반에서 상수도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수도, 공업용수 처리, 건축과 토목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미 국내 물산업에는 사적-초국적 자본이 진출해 있다. 1997년 하수도 분야 민영화 실시 이후 전체 하수처리장의 57%(207개소 중 118개소)를 사적 자본이 운영하고 있다.
▶물 사유화 사례
인도네시아 : 자카르타 수도가 사유화되고 초국적기업에 넘어가면서 수도요금이 2001년에서 2004년 사이 연평균 35% 상승했다. 사유화 당시 노동자 1000여 명이 정리해고됐다.
우루과이 : 2000년부터 물 사유화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수도요금이 10배 폭등했고 수질은 악화됐다. 기업의 방만한 운영으로 발생한 손실을 세금으로 메워야 했다.
볼리비아 : 코차밤바 지역의 물을 사유화하고 초국적기업에 넘긴 이후 수돗물 값이 30배 폭등했다.
남아공 : 1994년부터 지자체에 대한 보조금을 축소하고 사유화가 시작됐다. 1994~96년까지 요금이 600% 인상되고 1000만 명 이상에 대한 물 공급이 중단됐다.
이렇게 수도, 가스, 전기 등 국민의 삶과 밀접한 사회공공성의 영역은 현재 매각이나 시장개방이 진행 중이다. 가스, 수도, 전기를 팔지 않는다는 정부의 말은 진실이 아니며, 한·미 FTA는 자발적 개방을 이미 시작한 공동서비스 산업의 완전 개방을 촉구하는 형태로 조용히 추진되고 있다.
▶전력산업의 사례
1999년 전력산업 사유화의 일환으로 안양, 부천 열병합 발전소가 매각되고 나서 해당 주민들은 30~40%의 급격한 요금인상을 경험해야 했다. SK가 소유하고 있는 포항도시가스는 민영화 이후 요금이 12% 급등했다.
전력산업 구조조정 정책이 본격화된 2000년 이후 미국에서는 전력가격의 급등과 정전사태가 빈발했다. 대규모 정전사태 발생으로 급기야 5월 22일 캘리포니아는 긴급사태를 선포했으나 이미 1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은 전력공급 중단사태에 놓여 있었다. 사고가 지속되면서 전력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2000년 6월 11~15일 5일 동안 샌디에이고 지역의 소매 전기요금이 무려 270% 상승했지만,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2001년 1월 중순 사태는 더욱 심각해져서 18일에는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인 새너제이, 프리몬트,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 등에 정전사태가 발생했고 비상국면은 2주나 지속되었다. 당시 도매요금은 약 10배나 인상됐고, 피크타임에는 무려 30배까지 급등했다. 2003년 8월에도 뉴욕,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캐나다의 온타리오, 토론토에서도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민영화로 인해 전력의 안정적 공급구조가 해체되기 때문이다. 전력이 생산돼 일반 가정에 공급되기 위해서는 발전-송변전-배전이라는 시스템을 거친다. 전력산업 민영화를 위해 한국 정부는 분할매각 방식을 택했고, 배전 분할은 중단됐지만, 발전은 화력 5개사와 원자력 1개사로 나누어졌다. 현재 한국의 전력공급 구조는 발전 분할만으로도 전력산업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오로지 팔기 쉽게 분할한 현 시스템은 유기적으로 연계됐던 수직-통합적 시스템을 점차적으로 붕괴시키면서, 발전사 간 허구적인 경쟁구도를 창출했다. 전력산업에서 나타나는 작은 사고가 커다란 광역정전, 소위 블랙다운 사태로 급속히 퍼질 수 있다는 점은 캘리포니아와 호주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발전-송전-배전 체계가 연관되어 있는 상황에서 고장사태 등 비상사태가 발행할 경우 고장의 원인 자체가 복합적이어서 책임을 가리기 어렵다. 발전회사에는 계획예방정비라고 2~3년에 한 번씩 기계를 다 뜯어보고 점검하면서 안정적으로 전력생산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시스템이 있다. 그런데 발전회사를 5개로 쪼개 서로 경쟁시키면 운영비용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중요한 유지, 보수 업무를 소홀히 하게 된다. 50일 동안 해야 할 계획예방정비를 비용을 줄이기 위해 30일로 줄이고, 2년에 한 번 할 것을 3~4년에 한 번하여 비용을 줄인다. 결국 이 과정에서 대규모 정전사태(2006년 제주도와 여수의 사례)가 발생하게 된다.
▲ 지난 2010년 12월, 가톨릭농민회,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가 서울역 광장에서 전국 농민 결의대회를 열고, 쌀 대란 대책 수립·FTA 추진 중단 등을 촉구했다. 한·미 FTA로 인해 농민들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의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6. 국제통상에 관한 가톨릭교회 가르침
- 주교단의 가르침
● 피해국가 주교단의 관련 성명
국민 생명·재산권보다 국제기업 이윤 챙긴 점 비판
경제적 인간관에만 바탕 둬 개인·민족의 존엄에 큰 피해
▶멕시코 주교단의 NAFTA에 대한 성명(2008년 2월)
멕시코 주교들에 의하면 나프타협정 하의 농산물 관세 철폐는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농민 공동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내몰리거나, 미국 국경을 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가난한 농부들은 불법마약의 원료가 되는 작물을 생산하는 유혹에 직면해 있고 이는 폭력과 범죄를 야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멕시코 주교들은 이렇게 선언한다. “세상의 어떤 시스템도 죽음을 초래하는 한,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결코 전례거행이나 형식적인 설교의 틀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기적인 안락함과 수동적 자세에 머무르기를 용납하지 않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아 나서도록 촉구한다.”
▶캐나다 주교단
NAFTA를 맺은 지 8년 되는 해에 캐나다 주교들은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캐나다에서는 공해산업의 피해에서 자국의 환경을 보호하려는 조치가 미국의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고, 미국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소송에서 패배함으로써 벌금을 물거나 캐나다 국내의 환경보호 조치를 해제해야 했다. 주교단은 결국 NAFTA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권보다 국제기업의 이윤을 우선하고 국가의 미래 환경을 팔아넘긴 셈이라고 천명했다.
▶미국·캐나다·라틴아메리카교회의 성명
2002년 1월 28~30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3개국 가톨릭교회의 대표들은 세계경제, 국제통상, 환경과 노동 전문가들과의 합동 회의 후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NAFTA의 11장에 의해 국민들의 환경, 건강, 그리고 여타 사회적인 가치를 지켜야 하는 정부의 역할이 사기업의 이윤과 충돌할 때에 지대한 제약을 받을 수 있음을 우려했다.
2001년 4월 4일 캐나다 주교회의는 퀘벡에서 열린 미주 대륙 정상회의에 즈음해 정상들을 향한 성명을 발표했다. 캐나다 주교들은 각국 정상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을 전제하는 사회정의에 입각하여 경제의 세계화를 조정하고 국제적인 공동선을 증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함을 강조했다. “경제통합 그 자체가 공동선을 증진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다양한 이익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효과도 동반한다. 각 국가의 공식 기구들도 미주 대륙의 국가들 안에 상당수의 국민들이 수입의 큰 차별과 가난을 경험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들이 자신의 삶이 갈수록 더 불안하고 불평등한 사회로 바뀌고 있으며, 미래의 행복을 건설하려는 자신들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느낀다.”
캐나다 주교단은 미주 대륙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통합 정책이 지닌 부정적인 전망을 심각하게 우려하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을 인용했다.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신자유주의’라고 알려진 체제가 더욱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순전히 경제적 인간관에 바탕을 둔 이 체제는 수익과 시장 법칙들을 유일한 지침으로 여기며, 개인과 민족에게 마땅히 돌려야 할 존엄과 존중을 해치고 있습니다. …공정하지 못할 때가 많은 특정한 정책과 구조들의 희생자인 가난한 사람들이 실제로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 대하여 복음에 바탕을 둔 가장 좋은 대응책은 참된 정의를 얻을 목적으로 연대와 평화를 증진하는 것입니다.”(아메리카 교회, 56)
캐나다 주교들은 이렇게 단언한다. “나프타를 통하여 가난한 이들이 그 낙수 효과를 볼 것이라는 기대는 오직 신자유주의 이념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음을 많은 이들이 인식하게 되었다. 이 길을 계속 달려 내려가기 전에 우리는 나프타를 통하여 대체 누가 득을 보았는지 자문해야 한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북쪽 나라에 본부를 둔 거대한 다국적기업들이다.”
- 교황들의 가르침
● 역대 교황의 가르침은
개발도상국 산업 보호 없이 선진국과의 동등한 경쟁 강요는 국가간의 빈부격차 심화 경고
투자에 도덕적 원칙 적용 당부
교회는 예로부터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만 재산권이 누구에게나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왔다.
교황 비오 11세는 사유재산권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쳤다. ‘사회 경제의 발전으로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는 재화는 모든 사람의 공동선의 증진을 위하여 다수의 개인과 사회 계급들에게 분배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전체 사회의 복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사회 정의에 관한 이러한 원칙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이윤의 분배에서 배제하는 것을 금한다.’(비오 11세, 사십주년 27)
사유재산권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공동선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보장되는 것이지 무제한으로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역대 교황은 거듭 지적해 왔다. 따라서 자유무역의 자유도 사회 정의가 요구하는 원칙에 따라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정당성을 지닌다. 국제 교역에서 있어 개발도상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선진국과 동등한 경쟁을 강요하는 것은 불공정 교역이며 국가 간의 빈부격차를 갈수록 격화시키는 길임을 교회는 일찍부터 호소해 왔다.
‘고도로 공업화된 국가들은 주로 공산품을 수출하지만 저개발 국가들은 원료나 농산물 외에는 수출할 것이 없다. 공업화된 국가들의 제품은 진보하는 기술의 혜택으로 그 가치가 급속도로 상승하고 시장도 쉽게 발견한다. 그와 반대로 저개발 국가가 제공할 수 있는 일차 산업의 상품들은 급격한 가격 변동 때문에 공업 제품의 가격 상승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따라서 빈곤한 민족은 날로 더욱 빈곤해지고 부유한 민족은 날로 더욱 부유해지게 된다.’(교황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 57)
교황 바오로 6세는 1967년에 이미 국제교역에 있어서의 경제정의에 관한 주의를 환기시키며 선진국들의 부의 독점과 편중을 엄중히 경고했다. 그 시대는 FTA가 아직 거론되지도 않은 시기였지만, 국가 간의 통상 현실에는 이미 오늘날의 FTA가 초래하는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경제와 국제 경제에 있어서) 두 가지 저울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국내 경제에 대해서 지키고 선진 국가들 간에서 허용되는 동일한 거래 원칙이 선진국 대 후진국 사이의 통상 관계에 있어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말이다. 경쟁 시장을 아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공정하고 도의적인, 따라서 인간다운 것이 되게 하는 방법으로 유지하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들 사이의 통상 관계에 있어서는 조건이 너무나 다르고 능력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인간적이고 도의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 사회 정의가 요구하는 바는 국제 무역에 있어서 경쟁자들에게 적어도 어느 정도 공정하고 평등한 이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들의 발전 61)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세계화의 조류에 편승한 신자유주의 경제가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부의 편중과 불평등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세계의 부가 절대 수치에서 증가하고 있지만 불평등도 증대하고 있습니다. 잘사는 나라들에서는 새로운 사회계층이 빈곤의 나락으로 빠지고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진리 안의 사랑 22)
교회는 시장에서 있어서의 투자가 언제나 경제적 의미뿐만이 아니라 도덕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가르쳐 왔다.(백주년 36) 국가 간의 투자도 마찬가지여서 선진국의 잉여자본이 개발도상국에 투자될 때 마땅히 고려되어야 할 도덕적인 원칙이 지켜져야 함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자본이 형성된 방식과 자본이 생성된 곳에서 사용되지 않을 때 개인들에게 미칠 피해를 마땅히 고려하여, 정의의 요건이 지켜져야 합니다. 오직 단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여, 기업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과 실물 경제에 주는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또 개발도상국에서의 경제활동을 적절하고 합당한 방식으로 증진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투기적으로 금융 자원을 사용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진리 안의 사랑 40)
“세계화는 선험적으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청 사회학술원 연설, 2001.4,27)
세계화 현상과 함께 전 세계의 경제를 주름잡아온 신자유주의 경제관은 국제무역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모든 종류의 관세 장벽과 규제의 철폐를 압박하며 시장자유화를 추진해왔고, 오늘날 우리 정부가 각국과 맺으려고 하는 FTA는 그러한 시장자유화의 최종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국제통상전문가들은 FTA를 맺음으로써 서로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FTA를 맺은 대부분의 나라가 외형상의 경제규모는 커졌을지 몰라도 극소수의 대기업과 자본가들만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중산층이 몰락하여 빈곤층으로 떨어지고, 무한경쟁의 구도 안에서 안정된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국민의 과반수가 임시직과 비정규직에 종사하여 최저한의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 위한 복지 혜택도 못 받고, 최저생계비를 버는 것도 힘든 가혹한 빈곤을 강요당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오늘의 현실을 관찰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복음이 명하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과 모든 사회활동에서 최종적인 기준으로 공동선을 가르쳐온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 전통을 고려한다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FTA를 어떤 시각에서 보아야 할지 자명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