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이 진행돼 갈수록 일행이 가진 고민은 더욱 분명해졌다. 탈원자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행은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이번 독일 견학 기간 동안 하멜른시, 빌레펠트시, 함부르크시 등 각 지방 정부 환경·에너지 정책 담당관들을 만나 독일이 시행하고 있는 환경·생활 밀착형 에너지 정책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탈원자력을 위한 다양한 실천방안을 모색했다.
▧ 집중과 확산의 에너지 정책
일행이 찾은 하멜른시, 빌레펠트시, 함부르크시 등은 독일 북부 각 지방 정부 중에서도 성공적인 에너지 정책 사례로 평가 받는 도시이다. 각 도시마다 일찍부터 기후보호를 위한 에너지 전환·효율화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탈원자력을 위한 에너지 대안에도 튼튼한 기반이 됐다.
중심도시와 주변 중·소규모 도시 연합으로 이뤄진 하멜른시는 태양 에너지 발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멜른 시청의 환경기술부 텍트 마이어씨는 2001~2011년 태양 에너지 설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그래프를 보여주고 “2001~2009년 주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태양 에너지 관련 설비 설치 등의 에너지 리모델링에 지원금을 내주면서 태양 에너지 설비가 꾸준히 늘어났다”며 “현재 정부 지원금은 줄었지만 늘어난 용량으로 500세대에 100% 전기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하멜른시는 태양 에너지를 비롯한 다양한 재생에너지 산업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매년 9월 에너지 박람회를 여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 박람회에는 130여 개 회사, 1만5000여 명이 참가하며, 우리나라 기업도 포함돼 있다.
빌레펠트시는 2001년을 중요 기점으로 삼아 2020년까지 CO2 배출을 40%까지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20% 확장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빌레펠트시가 얼마나 CO2 배출에 신경 쓰고 있는지는 점심식사를 함께한 구내식당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었다. 모든 식재료를 주변지역에서 나는 제철음식으로 선정해 비닐하우스 사용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CO2를 절감하는 숨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에너지 정책 설명회에 이어진 빌레펠트시 에너지공급청 ‘슈타트 베아케’(각 시마다 설립돼 있는 에너지 공급 자회사)의 열병합 발전소 견학 중에도 환경과 기후를 생각하는 에너지 정책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 열병합 발전소는 나무조각을 태울 때 생기는 고열·고압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열을 난방에 쓴다. 빌레펠트시 ‘슈타트 베아케’ 사장 잉고 크룁케씨는 발전과정에서 나무가 타면서 발생하는 먼지를 자체적으로 걸러내는 시설을 갖추는 한편, 정기적인 환경영향평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빌레펠트시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2018년부터 모든 원자력발전소의 문을 닫기로 한 것이 1년 전 후쿠시마 사고가 이곳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 분야에도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이전부터 8개의 풍력 발전소를 짓는 등 재생에너지 사업 확장에 힘써온 빌레펠트시는 지금보다 더 많은 풍력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크룁케씨는 “풍력 발전에 대한 투자는 적은 비용으로도 CO2 발생을 확연히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함부르크시 역시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CO2 감소와 재생에너지 생산 증가를 기본 방향으로 하고 있다.
함부르크 내 CO2 발생원인 대부분이 전기 및 난방 등 에너지 사용에서 비롯된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함부르크시는 2050년까지 에너지 절감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시청 내 기후 보호와 에너지 절감을 위한 특별 부서를 만들고, 에너지 리모델링을 위한 지원과 에너지 효율화·최적화를 위한 정책 구성 및 자문 등의 역할을 맡겼다. 그와 더불어 산업체와 계약을 맺고 에너지 절약에 따른 할당량을 부여하거나 학교 및 일반 시민들을 위한 에너지 교육 업무를 실시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이곳 특별 부서에 배정된 재정 중 36.2%를 직접적인 지원에, 15.7%를 교통·수송 부문 에너지 효율화에, 12%를 새로운 에너지 정책 마련에, 10%는 에너지 관련 교육 등에 쓰고 있다는 점을 통해 활동방향을 읽을 수 있었다.
▲ 빌레펠트시 에너지공급청 ‘슈타트 베아케’ 열병합 발전소 견학 중 사장 잉고 크룁케씨가 발전 원료(나무 조각)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 직접 참여하는 에너지 정책
하멜른시는 각 지방자치단체 기후 보호 에너지 정책을 세울 때부터 일반 시민, 환경 활동가, 교사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초대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에너지 절약과 재생에너지, 정보 및 교육, 친환경·친기후적인 교통 시스템 등 관심 분야별 참여형 활동 단체를 구성했다.
각 활동 단체는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의견을 나누고 정책 수립과 그에 따른 실천 방안을 세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 활동 단체들이 하멜른시가 인터넷에 게재한 정책 수립의 양식에 따라 직접 정책과 실천방안을 구성해나간다는 점이 일행의 눈길을 모았다.
하멜른시에서는 에너지 조합을 만들거나 학생 중심의 태양 에너지 연구 프로젝트를 설립하는 등 그 범위도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빌레펠트시 또한 시민 참여 프로젝트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6개월 전부터 다양한 직업군이 모여 실제 삶에 영향을 주는 에너지 전환 방법을 나누는 등 짜임새 있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함부르크는 시 재정의 10%를 학교 교육에 사용하며 정규 교육 외 기후 변화 테마를 추가해 교사, 학생, 학부모가 공동으로 생활 속 CO2 절감 아이디어를 마련하는 등 참여형 프로그램에 성공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독일에는 각 시도마다 이 같은 시민 참여 프로젝트가 정착돼 있다.
▲ 하멜른시 버스터미널 건물 위에 붙어 있는 태양광 발전 시설. 시의 기후 보호 에너지 정책에 따라 학교, 공공시설 등에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하고 에너지 전환에 일조하고 있다.
▲ 하멜른시 에너지 정책 설명회 전경.
▲ 빌레펠트시 내 임야에 세워진 풍력 발전기.
■ 인터뷰 / 함부르크시 기후보호국 부대표 라이너 쉐필만
▲ 라이너 쉐필만 부대표
지역 녹색당원이기도 한 함부르크시 기후보호국 부대표 라이너 쉐필만씨는 20년 전 테니스 클럽에서의 일화를 떠올리며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20년 전 테니스 클럽의 친구들에게 에너지 절약을 위해 작은 차를 타라고 했더니 들어주는 이가 없더군요.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들이 ‘우리 집 에너지 리모델링 하느라 공사 중이야’, ‘이번에 차를 바꿨는데 작지만 연비가 너무 좋아’ 라고 말하더군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에너지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있었지요.”
함부르크시는 에너지 소비에 따른 CO2 발생에 경각심을 갖고 1990년부터 2050년에 이르는 에너지 전환 및 재생에너지 활성화 과정의 중반 즈음에 와 있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항구, 제조업 발달 도시로서 에너지 전환은 쉽지 않은 과제였지만 재생에너지 사업에 우선순위를 두고 에너지 절감에 힘쓰고 있다.
“함부르크 내 CO2 발생 통계를 살펴보면 에너지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82%나 됩니다. 이러한 수치는 세계적으로 비슷한 경향을 보이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는 에너지 절약 및 효율화 재생에너지 생산이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쉐필만씨는 정부 정책상의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 외에도 개인의 에너지 절감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바로 생활 속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는 생활양식부터 변화해 나가야 합니다. 가장 어렵지만 가장 먼저 실현돼야할 부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