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성사의 거행자 문제
2) 배령자(拜領者) 문제
구세사에서 불가사의한 문제 중 하나는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은총을 하사하시는 한편 인간 측의 협조도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측에서의 협조라면 어느 정도 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주례자 문제와 함께 제기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할 것은 성사를 배령함에 있어서 인간 측의 역할을 무시함으로써 성사를 미신이나 마술처럼 여기는 결과를 초래해서도 안되고 지나치게 인간 측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은총을 인간의 노력에 얽어 매어 놓는 결과를 초래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조건 혹은 자격을 기준으로 해서 기본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들로 우선 모든 배령자는 살아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이는 결코 성사배령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우선 간략하게 요약해 보면 세례의 경우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대한 바람이 있어야 하고, 고해의 경우 참회를 전제 조건으로 하며, 혼인의 경우 상호 간의 약속이 선행되어야 하고, 병자도유의 경우 하느님께 자신의 고통을 봉헌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발병이나 노쇠현상이 전제 조건이 된다. 이 외에도 교회가 정한 조건이 전제되는 경우도 있다. 즉 신품성사의 경우 아직까지는 배령자가 남성이어야 한다든가 혼인성사의 경우 서품받은 자는 배령불가라든가 하는 조건이 그것이다.
배령자 문제는 다른 한편으로 교회의 지향이라는 측면에서 중요시 된다. 배령자가 성사를 유효하게 배령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향에 따른다는 의지가 필요하고 효력을 얻기 위해서는 성사마다의 특성에 따르는 준비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이들 중에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신앙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는 개인적인 조건 혹은 자격에 관해서는 뒤로 미루고 교회의 지향에 관해서만 좀 더 다루어 보는 것으로 하겠다.
배령자의 의지 그리고 교회의 지향과 연관되는 전통적인 가르침을 맨 먼저 아우구스띠누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아우구스띠누스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성사의 주례자 문제를 다룰 때 동시에 배령자 문제도 다루었다. 그는 『순수한 세례는 주례자나 배령자의 양심의 순수함이나 불순함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반복하면서도 『너 없이 너를 내신 하느님께서 너 없이 너를 구원하시지는 않는다』(Sermo 169)고 말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할 때 인간의 협력을 원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가운데 성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임을 세례의 예를 빌려서 설파했다.
그러나 유아들은 세례 전에 세례를 받고자 하는 원의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신앙을 가진 어른들이 대행할 수 있지만 말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대리자가 답변을 하면 무효라는 것이다. 달리 설명하면 유아들의 신앙은 부모나 후견인의 신앙이 교회의 지향대로 유아의 신앙을 보장하기 때문에 세례를 가능하게 하지만 자기 의지를 표명할 수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본인이 자신의 신앙을 직접 표명해야 세례가 유효해 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사는 신앙을 전제로 한다. 그 신앙은 다름아닌 교회의 신앙이다.
교회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혹은 의지 표명을 전제로 한 세례성사의 거행을 가르쳐 왔다.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1201년에 그리스도 신앙을 반대하거나 반대 의사가 있는 자에게 그리스도 신앙을 강요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교리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했고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어른의 경우 성사 배령에 의지적인 행위가 필요하다고 했으며 베네딕도 14세도 1747년에 유대 유아들의 세례문제를 언급하면서 동일한 지시를 발표했던 것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도 같은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관련되어 있는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들 2가지만 소개하겠다.
「하느님의 말씀 안에 포함되어 있고 교부들로부터 항시 설교된 주요 가톨릭 교리 중에 가장 으뜸가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신앙을 통한 응답은 자유의지에서 나오는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자기 의지를 거슬러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해서는 안된다. 사실 신앙행위는 그 성질상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다」(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10항).
「성사는 인간의 성화와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 또한 하느님께 대한 흠숭을 목적으로 한다.… 성사들은 신앙을 전제로 할 뿐 아니라, 말과 사물로 신앙을 기르고 굳세게 하고 또한 드러낸다. 그래서 신앙의 성사들이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성사들의 표징을 쉽게 이해하고, 또한 그리스도적 생명을 보양하기 위하여 제정된 이 성사들을 지극한 열성으로 자주 받는 것이 중요하다」(전례헌장 59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성사 배령을 위해서는 신앙이 전제되고 또 그러기에 성사는 전적으로 신앙의 성사라고 강조하고 있다(1123항).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