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필 문학사에 길이 남을 원로 금아(琴兒) 피천득(프란치스코ㆍ87) 선생이 수필집 「인연」과 번역시집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을 함께 출간했다.
선생의 글 쓰는 습관이 워낙 과작(寡作)으로 이름나 있어 지난 93년 시집 「생명」 이후 한꺼번에 펴낸 이 두 권의 책을 대하는 독자들의 반가움은 유별나다고 할 수 있다.
3백여 쪽의 조금은 두툼한 무게로 펴낸 수필집 「인연(因緣)」(샘터 간)에는 자칫 「잃어버릴 뻔한 수필 몇 편」을 포함해 고도로 정제된 선생의 맑고 깨끗한 글들이 실려있다.
시문집 「산호와 진주」 속에 들어있던 시와 수필을 따로 떼어 「금아시선」 「금아문선」으로 엮은 것이 지난 80년 3월. 그 후 써온 시를 더해서 93년에 「생명」을 펴냈고 이번에 부르크의 애국시, 낙엽, 로버트 포스트Ⅱ, 1945년 8월15일 등 미수록 시들을 포함해 국어 교과서에 실린 대표적인 그의 수필 인연이라는 제목으로 엮은 것이다.
특히 이번에 새로 실린 「1945년 8월15일」은 해방의 환희와 열정이 단어마다 녹아있고 박진감에 차있어 지금까지 선생의 작품 세계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사치」라는 말로 불렀던 비평가들의 시각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역시 노 시인의 시들에서 볼 수 있는 심경은 세상을 한 발 떠나 관조가 자연스러워진 포용력이다. 시에 대해서도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선생은 『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라리 묵혀 버린다』며 『맑고 밝게 사는 것도 시를 짓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샘터 간)은 그가 영문학자로서 수필만이 아니라 외국시의 번역에 있어서도 얼마나 언어의 조탁(彫琢)에 심혈을 기울이는가를 충분히 느끼게 한다.
소네트 시집은 이미 그가 서울대를 떠난지 2년 뒤인 76년 문고판으로 발간한 바 있다. 찬양하는 말이 옥스포드 사전의 두께를 능가한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로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셰익스피어에 선생 역시 깊이 매료됐다.
소네트(Sonnet)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여러나라의 시형으로 13세기경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엄격한 정형시로 시인은 소네트를 쓸 때 표현상 많은 제한을 받게 되며 압축되고 간결한 표현을 쓰기 위해 최대한의 시적 기교를 요구한다. 따라서 단어 하나하나가 그 자리, 그 존재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시집은 전부 1백 54편, 1590년대부터 1609년 사이에 창작된 것들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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