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문다』 (요한 6, 36).
1974년 화창하던 어느 가을날,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양 옆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비포장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바람은 시원해서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기분이 「행복이라는 것인가 보다」생각하며 하늘도 보고 꽃도 보면서 거침이 없는 전방길을 굉음을 내며 마냥 달렸습니다. 아마도 「천당가는 길도 이런 느낌일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문득 한 부대 앞을 지나다가 보니 일단의 군인들이 대대본부 옆 언덕 위에 모여 있었습니다. 어찌 군종신부가 군인들이 모여 있는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있으리오! 불쑥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나를 발견하고 대대 부관이 급히 내게로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토요일 오후에 병사들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부대 내에 안전사고가 자꾸 나서 지금 고사를 지낸다』고 했습니다. 당시 군 쇄신운동의 하나로 미신행위 근절이라는 지침이 내려져있던 터에 고사를 지내는 현장을 군종신부가 덮쳤으니 당황해 할 수 밖에, 부관이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태연하게 고사를 지내는 장소로 갔습니다. 이미 대대장은 절을 마치고 술잔에 막걸리를 잔뜩 부어 젯상에 바치고 있었습니다. 고사를 바치던 장소에서는 임진강이 내려다보이고 멀리는 북한의 산과 하늘이 유난히 멀리까지 맑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돼지의 몸뚱이는 어디로 떨어져 나가고 달랑 머리만 젯상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런데 돼지머리는 천연덕스레 만면의 미소를 띄며 웃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민망해 하는 대대장 이하 간부들과 막걸리도 마시고 돼지고기 안주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나는 대대장에게 말했습니다. 『제사는 본래 제관인 나의 전유권인데 이제 내 밥벌이가 떨어지게 되었다』고 했더니, 대대장도 자기 일생 다시는 이런 권리침해는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 좋은 날씨에 경치 또한 좋은 곳에서 술과 고기로 잔치를 벌였으니 천당 길을 달려서 이제는 마치 천당에 와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머리만 달랑 상 위에 얹혀져 웃고 있던 돼지머리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돼지머리를 먹은 사람들이 그 고기를 먹고 「돼지를 좀 닮았으면」하고 생각했습니다. 돼지는 사람들이 기원하는 제사에 웃으면서 자신을 바쳤고, 사람들은 그 고기를 나누어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이 행사는 마치 미사의 성찬식 같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으로 바치고, 사람들은 예수의 몸을 나누어 먹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는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기쁘게 봉헌했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먹은 사람들도 그 음식을 먹고 예수처럼 자신을 기쁘게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기쁘게 나의 시간과 물질과 몸과 마음을 내어놓고 웃으면서 봉사해야 겠습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것은 진정한 봉사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문다』는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고사상의 돼지머리를 예수님께 비교하다 보니 약간 불경을 저지른 것 같지만, 웃으면서 자신을 내놓을 뿐 아니라 욕심많은 마음까지도 예수님은 돼지를 닮았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라! (마태 28,19)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셨겠지요.
달리던 오토바이를 한적한 코스모스 꽃길에 세워놓고 내려서 돼지머리와 예수님을 생각하며 나 혼자 큰소리로 한번 웃고는 수첩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돼지머리 고기는 예수의 몸이요, 예수의 마음은 돼지의 마음이라!』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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