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명륜동은 더욱 더 고요하다. 나의 집은 시계 소리만 들린다. 나 혼자서 지내는 밤, 뜰에 나와 있으면 정원에는 달빛이 비치고, 나는 그 정원에서 화초를 만지는 아내의 환영을 본다』
아내를 떠나 보낸 남편의 일상, 그 일상 안에 배어있는 그리움의 자취가 절절하게 담겨 있다.
소설가 고(故) 향정(香庭) 한무숙씨의 남편 김진흥 선생이 「먼저 간 아내에 대한 사부곡(思婦曲)」이라 할만한 그리움과 함께 「고백과 뉘우침」을 담아 「못다한 약속」(을유문화사 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한무숙 선생이 지난 93년 타계한 후 기념재단을 설립해 매년 그의 문화적 위업을 기리는 기념식을 거행하고 올해에는 특히 「한무숙 문학상」을 제정해 제1회 수상자로 박완서씨를 선정, 시상하는 등 고인이 된 아내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보여준 저자가 애절하게 그리움과 뉘우침을 적고 있다.
책은 모두 6부로 나뉘어져 있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 뿐만 아니라 팔순의 나이에 대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명상들이 이 책에는 함께 담겨있다.
좀처럼 털어놓기 힘든 고백과 뉘우침을 담은 참회록으로 아내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처럼 느껴지는 이 책은 아내를 먼저보낸 남편의 당혹감과 고독이 짙게 배어있다. 또 노년기 인생의 고독과 우울, 그리고 당혹감과 두려움을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잔잔한 슬픔과 감동을 함께 던져준다.
머리말을 쓴 소설가 이호철씨는 분문에 나온 저자의 글을 길게 인용하면서 『나는 이날 이때까지 80노인의 일상을 이 이상 극명하게, 그리고 처절한 정도로 정직하게 토로해낸 글을 대해 본 일이 없다』며 『매일 매일을 죽음과 대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80노인의 적나라한 모습을, 이 책 말고는 세계 문학을 통틀어서도 그 어떤 고전에서도 접해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당연히 「아내에게 저지른 잘못」들에 대한 뉘우침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고백과 참회가 솔직하되 담담하고, 담담하되 진지하며 지나치게 자기 학대적이지 않고 과장되어 있지도 않다는 점에서 오히려 높은 격조를 지닌다.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난 저자는 경성고등상업학교(현 서울상대)를 졸업한 후 조선금융조합연합회 이사 견습에 합격해 금융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한일은행장, 금융통화위원, 한국주택은행장, 한국종합금융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에는 「사부(四浮)」, 「백농 김진흥ㆍ향정 한무숙 서화집」이 있고 현재 한무숙 재단 이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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