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와 허약한 자를 모두 고쳐주게 하셨다』(마태 10, 1)
주님! 당신 제자들이 병자와 허약한 자들을 다 고쳐주면 의사와 약사 그리고 한의사들은 뭘 해먹고 살란 말입니까? 그들을 모두 실업자로 만드실 작정입니까? 요즈음 그들끼리도 서로 시끄럽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환자들을 서로 맡아서 치유해주려고 그러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 판국에 당신의 제자들이 이들을 고쳐주고 다닌다면 그들은 당신의 제자들을 그냥 둘 것 같습니까? 누가 병자이며 허약한 자입니까? 혹은 당신의 눈에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줘야 할 자들이 병들고 허약해 보이지 않습니까? 병자는 치료약을 그리고 허약한 자는 보약을 먹어야 하는데, 치료약사와 보약사가 다 같이 중증을 앓고 있다면 우리 서민이 큰 일이라 걱정이 돼서 해보는 말입니다.
주님, 세상에는 질병도 많습니다. 그 모든 병을 다 치유해 주자니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마태 9, 37)하지요. 주님, 우선 한가지부터 치유하면 어떨까요? 그것은, 자신의 병은 치료할 생각을 않고 남의 병만을 고치려 애쓰는 병 말입니다.
이번 선거를 전후해서 보니까 돈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입후보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입후보자들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투표권자들이 더 문제라고, 돈을 많이 쓴다고 욕을 하면서도 돈을 안 쓸 수 없게 만든다고,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선거 사무실로 전화하는 것은 결국 뭘 좀 가지고 찾아오라는 얘기인데, 30명이 모였다고 해서 가보면 서너 명이 잡담을 하고 있으면서 왜 30여 명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고 물으면 곧 다 올 거라고 대답하는데, 거짓말인줄 뻔히 알면서도 가지고 간 선물을 바치면서 부탁 인사만 하고 나와야 하고, 보통은 직접 부리나케 가지만 간혹 바빠서 대신 누구라도 보내면 자기들을 무시한다고 욕을 할 때의 심정은 자신이 후회스럽고 비참하기까지 하답니다. 그러니 국민들의 의식이 더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거권자들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선거 때는 국민의 공복이 되어 봉사하고 어쩌고 하지만 당선만 되고 나면 언제 그런 말 했던가 싶게 민생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입신에만 열을 올리며, 더구나 자신들이 입법한 선거법을 자신들이 지키지 않고, 선거 비용에 관한 보고만 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국회의원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공직자들도 공금이나 세금 떼어먹고 잡혀 들어가고 뇌물 받아 먹고 사직서 쓰는 걸 보면서 누구나 관공서를 출입해봐서 알지만, 「어디 그들 뿐」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국민들도 문제지만 대다수 국민은 선량하고 공직자 내지 국가 지도자들이 더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신자들은 『교회가 너무 세속화, 형식화 되어 간다고, 성직자들도 옛날 같잖아 자기들의 개인 생활은 철저히 챙기면서 사목은 순전히 직업적으로 수행한다, 외형에 치우치고 어떤 때는 주일 강론이 돈 얘기로 시작해서 돈 얘기로 끝난다고, 교회 내지 성직자가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말합니다.
성직자들도 말합니다. 『성직자 중에도 유별난 성격을 지닌 분도 더러 있긴 하지만, 신자들이 문제랍니다. 교회에 봉사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낯내고 돈이라도 좀 내고 나면 생색내기에 바쁘고 교회의 간부가 되는 것을 벼슬이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주일미사나 전례 참석은 마치 교회를 위하여 선심이나 쓰듯이 하고 솔직히 개인기도는 어떻게 하는지 신앙심의 깊이는 모른다』고 말합니다.
주님! 자동차 뒤에 「내 탓이요」라고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며, 그게 아니고 「내 큰 탓이요」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제 탓을 인정은 하면서도 대수롭잖게 여기고 남만을 탓하는 이 시대에, 당신이 제자들에게 그들 모두를 고쳐주라고 하신 것은, 우선 제자들이 자기들도 병들고 허약한 자임을 깨닫고 자신부터 반성하는 모범을 보임으로, 세상은 이를 보고 배워 그들도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이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도록 하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으면 안 될까요?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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