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사실 한국에 대해 「캄캄」합니다. 특히 한국의 문학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지요. 훌륭한 한국 문학 작품들을 프랑스 독자들에게 알렸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암송해 봤음직한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이 매기석(梅基石ㆍ63ㆍPierre Mesiniㆍ파리외방전교회)신부와 김현주(그라시아ㆍ27)씨에 의해 번역되어 프랑스 독자들에게 소개됐다.
프랑스 「오트르 땅(Autres Temps)」출판사에서 최근 출간돼 배편으로 바다를 건너오고 있는 이 책은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추진하는 번역 출판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선정된 20편의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매기석 신부와 한국의 인연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 지난 61년 한국에 파견되어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에서 74년까지 생활한 경험이 있는 매 신부는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넘은 95년 5월말 「한국에서 살고 싶어서」 다시 고국을 떠나 한국을 찾았다.
「님의 침묵」이 프랑스에서 출간되기까지 매 신부가 든든한 번역 파트너로 함께 호흡을 맞춘 김현주씨를 알게 된 것은 지난 92년.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유학길에 나섰던 김씨는 매 신부의 오랜 벗이었던 고모부로부터 매 신부를 소개 받았다.
그해 여름 아비뇽의 축제에 초대됐던 김씨는 벨기에로 돌아온 후에 감사의 글과 함께 「님의 침묵」을 불역해 함께 띄웠다. 얼마후 매 신부가 직접 아름다운 불어로 곱게 다듬어 놓은 「님의 침묵」이 답장 속에 함께 끼워져 날아왔다.
시집 「님의 침묵」은 이렇게 따뜻한 정이 담긴 편지로 시작됐고 방학 때마다 두 사람은 더 아름답고 세련된 번역을 위해 진지한 토론을 벌이면서 한마디 한마디 만해의 시를 불어로 엮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지만 사실 고도로 압축된 시어를 전혀 다른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었다고. 더욱이 만해의 시가 지닌 심오한 사상적 깊이는 그 어려움을 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절대자, 조국, 연인 등 다중적 의미를 내포하는 시어 「님」은 따로 적합한 불어 단어를 찾기가 어려워 그저 「Nim」으로 적었다. 동양사상의 오묘한 의미는 더욱 전달하기가 어려웠다. 예컨대 「공(空)」이라고 할 때 이는 단순히 「비어있음」이 아니라 오히려 충만의 의미까지도 내포한다는 것을 서양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시인의 사상과 느낌을 잘 알지 못했었다는 데에 가장 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당시만 해도 만해라는 인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매 신부는 번역을 하면서 『만해의 웅장한 스케일, 혁명적 사상, 자유인다운 풍모에 감탄했다』며 아울러 『한국에 대한 이해와 사랑도 더욱 깊어졌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매 신부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흠뻑 빠져 윤동주의 시들을 번역한데 이어 황순원의 단편 「잃어버린 사람들」을 불역 중이다.
출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