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뿐 아니라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여라』(마태 18, 22)
해마다 6월이 되면 6ㆍ25를 상기하게 됩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라 상당히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나자 학교를 국군 병원으로 내어주고 우리는 신나는 야외수업을 했습니다. 때로는 활(국궁)을 쏘는 곳에서 때로는 방앗간의 창고에 가마니를 깔고 공부했습니다.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상자를 잘라내서 대각선으로 끈을 메어 목에 걸면 근사한 책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수업분위기가 되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매일 빠지지 않고 음악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마 4학년때였던 것 같습니다. 전쟁으로 중단됐던 학예회를 한다고 매일 음악시간은 두배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예회 연습 도중에 담임선생님이 나만 골라내서 영감소리를 낸다면서 노래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노래에 대해 심한 열등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린 마음은 크게 상처를 받았고 담임 선생님이 싫어서 일체 공부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매일 노래 연습만 하는 학교에 가고 싶지도 않았고 또 시간에 들어가지 않아도 다행히 선생님은 아무 꾸중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담임선생님이 바뀌었지만 나는 그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선생님을 바로 쳐다보지 않았으며 물론 여러 사람 앞에서 노래하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 후에도 살아오면서 노래를 해야 할 기회가 있을 때 자주 나는 그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 때마다 나는 열등감에서 오는 어떤 아픔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가 나쁜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때 받은 상처를 잊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내가 노래를 못하게 된 것이 마치 그 분의 책임인 듯 여기기도 했습니다.
용서라는 것은 아픔을 느끼는 것을 기준으로 할 때, 상처의 깊이에 따라 일곱번의 일흔 번도 모자랄 수가 있다고 봅니다. 과거의 상처를 생각할 때마다 용서를 결심한다고 할 때, 아마도 평생을 두고 용서를 재다짐해야 할 사항도 있을 것이며, 생각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큰 아픔을 느낀다면 어떻게 용서란 단어를 쉽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서로 만나서 대화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리고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도대체 사과할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용서라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때로는 오랜 시간이 지나 자연치유가 됨으로 상처도 아물고 다만 기억이라는 흔적만이 흉터로 남을수 있지만, 의지적으로 잊으려고 한다고 잊혀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아픔이 치유되지도 않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동안은 나만이 아픔을 느끼고 있으므로, 차라리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는 내 생각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선생님이라야 총각이었으니 20대 청년이라 무슨 경험이 있었겠습니까? 그가 내게 어떤 상처를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치르려는 일념으로 열성적으로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겠지요. 상처를 주려고 한 것이 아닌데 상처는 내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주지도 않은 상처를 그 분에게서 받았다고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분이 아직 살아 계신지 모르지만, 졸업 후 한번도 찾아 뵌적도 없지만, 아픈 추억을 안고 그 분의 성함과 당시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승의 날에는 제일 먼저 그분 생각이 나곤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6ㆍ25전쟁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랬다면 공산당을 무진장 미워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아무것도 그 원인이 아니고 다만 내가 영감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는 몇년전부터 내 노래도 들려줄 가치가 있음을 깨닫고 자신있게 못하는 노래를 합니다. 노래방이 생기고 모든 사람이 다 노래를 잘하는 세상에 못하는 노래가 얼마나 더 드물고 귀한가 자위합니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만나기 어렵거나 내게 대해서 무신경해 보이거든 차라리 내 사고를 바꾸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6ㆍ25를 치룬지 반세기를 지내온 남북의 형제도 서로의 발상(發想)을 바꾸어야 할 시기가 지난 듯합니다.
그래서 꿈속에서나마 만장하신 청중 앞에서 멋진 목소리로 근사한 노래 한곡 선사하고 열광하는 군중의 갈채 한번 받아 봤으면!…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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