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2월1일
『모든 신부와 모든 수녀와 모든 교우들에게나 혹시 조치못한 표양을 준 것이 잇섯스면 용서하여 주기를 청하노라. 내가 일부러하지는 아니하엿지마는 혹시 모르는 사이에 저들의 마음을 상한 것이 잇스면 또한 니저바려(잊어버려)주기를 청하노라. 저들이 혹시 내게 잘못한 것이 잇스면 나는 발서부터 진심으로 다 용서하여 주엇노라. 모든이 피차 서로 애덕의 사슬로써 결합하기를 간청하노니 이 애덕의 사슬은 조선 모든 신부들을 항상 결합케 하엿도다』
1933년 1월23일 제8대 경성교구장 뮤뗄 민 대주교가 서거했다. 1933년 2월1일자 천주교회보는 거의 1면 전체를 할애, 민 대주교의 서거 기사를 싣고 있다.
윗 내용은 민 대주교가 조선교회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에게 남긴 유언서 중 일부. 이 유언서가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당시의 상황으로는 파격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민 대주교 각하의 유언서(閔大主敎 閣下의 遺言書)라는 제목이 붙은 이 유언서 전문(全文)을 공개하는 기사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전문(前文)이 소개되어 눈길을 끌고있다. 『이 유언서는 각하께서 친필로 쓰시고 봉하야 두섯든 것을 선종하신 다음에 원 주교께서 발견하시고 삼가 개봉하야 읽으신 후 감격에 넘치는 마음으로 일반에게 공식으로 발표하시는 것이다』
당시 유서를 발견하고 그 내용을 읽음으로서 감격했다고 밝히는 라리보 원주교의 표현에 걸맞게 유언서의 전체문장은 기도와 감사와 용서를 청하는 내용으로 점철돼 있어 우선 감동을 주고 있다. 생전에 마음을 상하게 한 모든이에게 용서를 청하고 그 역시 용서를 베푸는 것으로 유언의 백미을 이루는 이 내용은 오늘날 우리 신자들이 선종시 선택하는 유명한 문구로 전승되고 있다.
민 대주교는 그의 유언서 내용대로 「조선인의 구령함을 위하며 또한 조선지방에 가톨릭교가 전파되기를 위하여」 감심으로 생명을 바친 분이었다. 그가 조선 땅을 처음 밟았던 1880년은 아직 신교(信敎)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던 어두운 시절이었다. 따라서 그는 조선인 복장으로 변장, 밤중을 이용하여 출타를 해야 했고 그렇게 5년간 조선전교에 힘썼다.
1885년에 빠리로 돌아간 그는 1890년 주교로 승품되었고 1891년 다시 조선땅을 밟았다. 물론 조선교구장의 자격으로 였다.
무수한 순교자를 배출한 혹독한 박해가 마침내 막을 내린지 불과 수년이 채 못되었던 당시 조선에는 1만수천여 명의 교우가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1891년부터 1933년까지 그가 조선과 경성의 교구장으로 재임한 40여 년 간 조선은 1개 교구에서 5개 교구로 늘어났고 신도수는 12만을 헤아리는 교회로 성장했다.
1933년 당 80세. 극동에서 가장 연장자였던 민 대주교의 장례식은 서거 3일만인 1월26일 오전 9시30분 경성 종현대성당에서 대구의 다블뤼 안 주교가 집전하는 미사로 성대히 거행됐으며 그의 시신은 용산신학교 내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각하의 일생이야말로 건설의 일생이었고 조직의 일생이었나이다. 각하의 옷깃에 어린 양가치 무럭무럭 자라나는 10만 대중은 경탄하고 애통하온 말삼 어찌 다 하오리까』. 1933년 2월1일자 천주교회보 1면 애도사는 민 대주교의 일생을 한마디로 건설과 조직의 일생으로 정의했다.
그랬다. 1백여 년 간 이어진 끈질긴 박해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던 조선교회는 그의 손에서 건설되었고 그의 손에서 형체가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과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는 초토화된 조선의 교회를 반듯하게 세우고 발전시킨 은인 중의 은인임에는 틀림이 없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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