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재일치를 위한 성사-성사교회론에 대한 공감
성사성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불가시적 신비인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가시화 내지 현실화시키는 거룩한 상징성이 그것이다. 요컨대 그러한 상징임이 바로 성사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사로서 자각해야 할 성사성 역시 불가시적 신비인 삼위일체 하느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가시화-현실화시키는 거룩한 상징성에서 찾아야 한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과 직결되는 내용을 사도들의 설교를 토대로 집약하면 이렇다. 첫째, 역사를 완성으로 이끄시어 만물을 그리스도 아래로 모아 구원하시려 한다는 것(에페 1, 9∼10). 둘째, 그분의 계획이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났다는 것(요한 1, 18). 그래서 이제는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신비라는 것(골로 2, 2). 셋째, 아버지의 신비이신 그리스도는 그분이 함께 계시는 그분의 성도들, 즉 교회(에페 3, 9∼11) 안에서 드러났다는 것(골로 1, 27)이 그것이다. 결국 사도들이 설교한 내용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교회 안에서 불가시적인 하느님의 신비가, 즉 구원의 신비가 가시화-현실화되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교회의 이러한 모습이 바로 교회를 성사이게 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지니고 있는 거룩한 상징성이 교회를 성사이게 하는 것이다.
먼저 본질적인 측면을 보면 신적 본성인 신비체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로 되어 있다. 신비체는 인간의 몸을 유비로 해서 신비이신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 인간과 인간의 일치를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다. 인간의 몸이 여러가지 지체로 이루어져 있고 그 기능들도 각기 다름에도 불구하고 일치되어 한 인간의 몸이 되듯이, 신비체 역시 그 지체가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역할들도 각기 다르지만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하느님과 그리고 지체들인 인간 상호 간에 일치되어 신비체가 되어 있다(교회헌장 7항). 즉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임으로 해서 신비체인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드러내시는 신비 자체로서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야말로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아버지의 성령을 또한 자신의 영으로 하시는 분이시다. 아버지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예수 그리스도는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 파견하신 성령으로 충만하고, 또 그 성령으로 인해서 아버지와 일치하여 있는 분이시다. 따라서 신비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하시는 하느님의 삼위일체성이 드러난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신비체 안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 그리고 지체인 인간 상호 간의 일치도 똑같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당신 성령을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주셨듯이 그리스도의 성령을 다양한 지체들에게 주신 것이다(갈라 4, 6참조). 그리하여 인간의 몸이 영에 의해서 생명력을 얻고 일치되어 있듯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다양한 지체들이 이루는 신비체도 성령으로 인해서 생명력을 얻고 일치를 이룬다(교회헌장 7항). 그러므로 교회의 신적 본성인 신비체 안에서 살펴낼 수 있는 것은 삼위 하느님께서 일체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일체이신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치를 이루게 하여 신비체로서 생명의 존재, 성장하는 존재가 되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은 성령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 사실을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자각하고 드러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백성」인 교회는「하느님 백성」 이라는 자신의 인간성 곧 가시적인 본성을 통해서 불가시적인 신비체인 신적 본성으로서의 실체, 성령의 활동에 의한 일치관계로서의 신비체라는 자신의 실체와 생명을 얻어 성장하는 신비체로서의 모습을, 그래서 구원을 사는 모습을 「하느님 백성」 안에서 그리고 세상 안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물론 그에 합당한 삶을 사는 이른바 「사람들을 위한 성사(Sacramentum propopulo)」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자각을 전제로 할 때 교회는 자신의 존재와 사명 혹은 역할에 걸맞는 실재일 수 있다. 즉 교회는 자신의 기능이 은총의 표상이자, 그리스도와의 해후의 시간이자 공간으로서 인간실체를 변형시키는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공의회를 전후로 개신교를 포함한 가톨릭의 많은 신학자들이 이러한 내용의 성사교회상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이제 과제로 남겨진 것은 역시 많은 신학자들이 인식을 같이 하고 있듯이 성사가 「정적인 사물」이 아니라 「동적인 행위이자 삶」인 것처럼 교회 역시 성사다웁게 「동적인 행위이자 삶」으로서 사람들과 세상을 위해 살아야 할 일뿐이다. 이 일은 가톨릭은 물론 개신교 제 교파의 일이기도 하다. 성사다운 교회로서 그러한 일을 해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그리스도교 재일치 차원에서 한결 고무적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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