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책을 마음껏 읽고 싶은 욕심에 나는 학교 도서실의 일을 도운적이 있었다. 소음과 매연으로 감각의 위기를 느끼는 도시 생활에서 자주 여학교 도서실에 깃들었던 책냄새, 약속된 고요와 몰두를 그리워한다. 산소와 녹빛에 굶주려 있듯이 정신의 숲을 걷고 싶은 갈증도 큰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문화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런 공간에 대한 욕구로서 2천년 교회사를 산책할 수 있는 가톨릭 도서관이 생기는 기대를 해본다. 이런 생각에 나는 『내가 만약 가톨릭 도서관을 짓는다면…』하는 설계를 자주하곤 한다.
우선 겨울에 햇빛이 잘 들고 여름에는 잎이 큰 나무들이 도서관 방마다 엷은 녹빛을 선사하는 낮은 건물을 지을 것이다. 그 주변에는 사과나무와 호두나무가 열매를 키울 것이다.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아도 손이 닿을 수 있는 책장에 신학, 교회사, 성인전기, 영성과 묵상, 문학, 철학, 사회학, 심리학, 예술 등의 책들이 잘 분류되어 있는 방에는 책상들도 넉넉하게 배치되어 있을 것이다. 어린이책들이 있는 방은 동화처럼 꾸며졌고 구석에는 그림도 그리도록 되어있다. 한국ㆍ외국잡지들이 있는 방에는 몇 십년 전의 신문기사나 잡지의 논문도 찾을수 있다.
문득 샤갈의 성화(聖畵)나 렘브란트의 「목동들의 경배」, 러시아의 이코네를 보고 싶을 때도 이 곳을 찾으면 된다. 이런 그림책을 감상하면서 우리는 실제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곳으로의 여행을 꿈꿀 것이다. 듣고 싶은 음악을 구해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이 예술의 방에서 우리는 우리나라 종교화와 종교음악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게도 될 것이다. 어느 공간에는 항상 소규모의 미술전이나 음악회가 열리고 어떤 때는 비디오나 슬라이드가 상영되거나 작가와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아주 조그마한 방 하나는 언제나 기도와 고요에 잠길 수 있도록 꾸며놓을 것이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도시의 한가운데서 정신의 숲을 경험하고, 고요 속에서 신에게로 열리는 자신을 볼 수도 있으리라. 냉담으로 감동이 사라진 사람에게 한 장의 그림이 신심을 다시 불피우게 할 것이다. 이 도서관에는 언제나 자연스런 친절과 안목을 갖춘 사서(司書)들이 일하고 있을 것이다.
수많은 문화강좌를 대하면서 무엇이든 배우지 않으면 불안한 도시인에게 강사없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 배움의 강박관념 없이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는 도서관 이용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도 비현실적인 꿈인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