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 10,39)
한 부인이 찾아와서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옛날에 자기 아이들을 키울 때에는 몰랐는데, 지금 손자를 키우면서 보니까 아이들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답니다. 하루종일 혼자서도 노는데, 매일 그림을 맞추어 집짓는 놀이를 하면서 잘 논답니다. 매번 그림을 다 맞추면 손뼉을 치고 좋아한 다음, 헐어버리고 다시 집을 짓기 시작한답니다. 이 놀이를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항상 반복하면서 혼자 뭔가를 중얼거려가면서 노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어째서 싫증도 안내고 그렇게 즐길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매일 같은 놀이를 하면서도 지루하게 느끼지 않는 비결은「몰두」하는 데에 있습니다. 다른 모든 일을 잊고 몰두하면 지루할 여가가 없지요. 그럴 때에 일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몰두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로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딴 곳에 정신을 팔고 있어서이고 다른 하나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초대받아 어떤 집에 가면 우선 주부의 손가락에 반창고를 발랐는지 살피는 습관이 있습니다. 딴 생각하면서 식사준비를 하는 사람은 꼭 손가락을 칼로 베든지 불에 데기 일쑤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내가 잘 못 온 것입니다.
설마 내가 방문한다니까 환상적인 기쁨에 젖어 나를 생각하느라고 그랬을리는 없을 것이고, 아마도 만인이 다 바쁜 세상에 이것저것 신경을 써야할 일도 많은데다 시간이 적절치 못해서 딴 생각으로 허둥대다 보니 그렇게 되었든지, 아니면 초대하기 싫은 것을 체면상 초대해 놓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다보니 손가락을 다치게 된 것입니다.
어떤 본당에서 「바자」회를 한다고해서 가 본 적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손님을 맞이하고 부인들은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느라고 바쁘고 젊은이들은 물건파는데 매달려 있었습니다.
역시 나의 관심은 먹고 마시는데 있는지라 부인들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향하며 나는 누군가를 찾으려 살피고 있었습니다. 영락없이 성모회장의 손가락에 반창고가 붙어있었습니다. 나혼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왜냐하면 미리부터 틀림없이 성모회장 손가락에 무슨 일이 생겼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이것이 적중한 것입니다. 이런 행사를 치르자니 마음은 급하고 회원들은 입안에 혀처럼 움직여 주지는 않고 다급한 김에 칼자루를 잡았다하면 손 다치기 십상입니다.
더구나 회장님이 남들이 보는 앞에서 멋지게 시범이라도 한번 보일양이면 영락없이 다치게 되어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도 딴 곳에 신경쓰면서 집중하지 못하는 한가지 유형이 될 것입니다. 만일 그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면 성공적으로 시범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함께 어떤 일을 하다보면 꼭 몸을 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시늉만 하든지 바쁜 체 분주하게 왔다 갔다만 하든지 입만 가지고 일 다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끼여들면 꼭 어떤 일을 더 치든지 자기가 다치든지 합니다.
목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꼭 거창하게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사소한 일상생활에서도 제 한 몸을 사리는 것은 목숨을 얻으려 하는 것이요, 제 몸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몸 사리지 않고 또 누구에게 보이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현재 해야 할 자기 일에 열중한다면 목숨을 얻을 것입니다.
더구나 주님의 일에 열중만 할 수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어떤 봉사에 헌신할 때나 주님께 드리는 예배 특히 미사전례에 참여할 때에 주님을 생각하며 거기에 몰두한다면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같은 절차에 따라 독서를 듣고 영성체하더라도 결코 지루하지도 않을 것이며 습관화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할 때마다 새로움이 있고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이 잘 되어 즐거울 것입니다. 그 몰두하는 순간만은 부모도 자녀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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