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103위 성인 가운데는 한때 마음이 약해졌다가 석방된 후, 다시 순교의 열정이 불타올라 자진하여 칼날 아래 목을 드리운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초기의 순교자들 가운데서도 일시 마음이 약해지거나 관장의 호의로 석방되었지만, 끝내 순교의 보혈(寶血)로 자신의 몸을 씻음으로써 이전의 잘못을 보속하고 영광을 얻은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주님의 은총에 대한 또 하나의 값진 대가였으니, 순교 혈사의 일부분도 반드시 그들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 중에서 먼저 이야기해야 할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최필공(崔必恭)토마스이다.
서울에서 의관을 지낸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790년에 천주교 교리에 대해 듣고는 즉시 입교하였다. 그때까지 관직을 얻지 못한 탓에 결혼도 하지 못한 채 가난하게 생활하던 그였지만, 솔직하고 너그러운 본성 때문에 입교하자마자 크게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교우들은 그를 가장 열성적인 사람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신앙의 열정으로 두려움을 모르게 된 그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가운데서도 『만물의 위대한 주님을 반드시 섬겨야 합니다』라고 외치고 다녔다.
토마스는 이러한 명성으로 인해 1791년에 신해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되어 형조로 끌려가게 되었다. 여기에서 문초를 받게 되자 그는 서슴지않고『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교리를 지켜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주님께 대한 본분을 다할 용의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형벌을 가하던 형관들조차도, 이를 구경하던 외교인들조차도 그의 심지가 목석과 같고, 교리를 따르는 흉악한 마음이 이를 데 없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당시 정조 임금은 그에 관한 사실을 듣고는 가능한 수단을 다 이용해서 그의 신앙심을 굴복시켜 보도록 명하였다. 이에 형관들이 한편으로는 위협하고, 한편으로는 만가지로 달래면서 그의 마음을 돌이켜 보려고 하였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토마스의 숙부와 동생을 불러다가 배교를 간청하도록 하였다. 세속의 육정과 싸우는 동안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였지만, 그는 결코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다고 되풀이 하여 말하였다.
어느 기록에는 이때 토마스가 배교한 뒤 석방되었다고 한다. 반면에 다른 기록에는 형관들이 거짓으로 배교를 꾸며서 임금에게 보고하였다고 하며, 더욱이 정조는 보고내용을 듣고는 기뻐하면서 그를 혼인시켜주고 관직까지 주었다고 한다. 물론 여러 기록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석방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석방된 후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몹시 슬퍼하고, 오히려 이전보다 열성을 더하여 신자로서의 모든 본분을 지켜나갔다.
다시 그의 열성은 교우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주문모(야고보)신부를 만나 성사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799년 8월(음)에는 다시 체포되어 신문을 받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결코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강생 구속(降生救贖)과 같은 천주교 교리와 충효의 근본도리에 대해 솔직하고 확신있게 설명하였다. 부모 형제가 달려와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달랬지만, 조금도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정조 임금은 다시 토마스를 석방해 주도록 명하였다. 아마도 이때 정조가 그를 체포하도록 한 이유는 단지 그의 마음과 태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아보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정조가 승하하면서 노론 벽파에 의해 천주교 탄압이 시작되었고, 토마스는 1800년 12월 17일(음력)에 맨 먼저 체포되었다. 신유박해령이 공식적으로 내려진 것은 이듬해 1월이었다. 그 동안 교우들과 함께 옥에 갇혀있던 그는 순교를 결심하고 온갖 형벌을 참아받았으나, 이번에는 예전처럼 신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즉시 판결이 내려졌다. 요사한 학문을 숭상했다는 죄목으로 정법(正法) 즉 참수형에 처해진 것이다.
1801년 2월 26일(양력 4월 8일), 토마스는 동료들과 함께 서소문 밖의 형장으로 끌려나갔다. 그리고는 거리낌없이 형장으로 걸어나가 칼을 받았다.
그런데 휘광이는 그의 목을 단번에 자르지 못하였다. 그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 준 것은 두 번째의 칼질이었다. 이때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말은 첫 번째 칼질이 끝나고 난 뒤 손에 흥건히 흘러내린 자신의 피를 쳐다보면서 『보배로운 피』라고 외친 것 뿐이었다. 실제로 그것이 천국에 이르는 노자(路資)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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