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영성을 위한 성사
상기의 주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는 성사교회론과 연관된 상태에서 다루어야 한다.
「구원은 인간을 통하여 세상에 주어진다. 구원은 인간 공동체 안에서 체험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인간 공동체는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와의 공동체이다.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속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리스도가 가져온 구원을 체험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앙 속에서 구원을 체험하는 그 공동체를 다른 말로 하느님의 백성이라고도 한다. 또한 이러한 공동체를 교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교회를 성사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와의 일치라는 거룩한 신적 요소를 그 요소와 불가분한 신앙인들이라는 인간적(물질적)요소가 명백하게 표현하고 드러내는 상징 즉 거룩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가 교회가 되게 하고 그래서 성사일 수 있게 하는 것은 성령이다. 성령이야말로 일치의 성령이시고 구원의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약된 성사교회론에 의하면 성사인 교회가 자신의 존재이유에 걸맞게 실재할 경우 그것은 곧 성령께 합당한 존재로 실재하는 것이자 영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통적인 규정대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네 상태에 걸맞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령의 현존과 일치하는 삶의 방식을 수련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영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성의 삶은 곧 성사의 삶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아니 신학자 태일러(M. J. Taylor) 의 표현대로 이러한 그리스도교 영성은 바로 성사 영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는 성사가 그리스도교 영성을 위해 근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첫째, 성령체험의 방식인 성사 둘째, 성령체험의 표현 방식인 성사라는 논제 아래 정리해 보겠다.
1) 성령체험의 방식인 성사(상)
성령에 대한 체험은 일단 아버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통해서 그리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통해서 할 수 있다. 실제로 아버지와 아드님은 성령 없이 아무 것도 하시지 않았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를 비롯해서(창세 1,1), 말씀이 사람이 되셨을 때에도(마태 1, 20), 그리고 사람이 되신 말씀이 지상 생애를 사시는 동안에도(루가 4, 14) 줄곧 하느님과 함께 하셨다.
그런가 하면 똑같은 성령이 부활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아버지의 선물로 사람들에게 부여되셨다(요한 20, 23: 루가 24, 49). 그리고 마침내 같은 성령은 부활하시어 생명을 주시는 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1고린 25, 45)의 영으로서 예수께서 지상 생애 중 그 토대를 잡으신 「교회」의 「생명력」이자(요한 7, 38~39) 「영혼」으로 현존하시면서 교회가 자신의 목적으로 하는 「하느님 나라」의 가시화 사업을 해 나가도록 「안내자」(요한 16, 13: 사도 16, 6~7)이자 「교사」(1고린 2, 10~11: 1고린 12, 3: 로마 8, 26 등)로서 활동하신다.
그러므로 첫번째 교회 공동체의 삶을 항구하게 재현하고자 하는 이 지상의 교회가 성령께서 현존하시지 않거나 활동하시지 않는 그러한 교회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니라 세상 안에 있는 여느 단체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결국 교회는 교회로서 존재하고 또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언제까지나 자신의 「생명력」이자 「영혼」인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성령의 안내와 지도를 받아야 한다.
성령의 안내와 지도 즉 교회 공동체의 생명력이자 영혼인 성령께서 활동하신 내역이자 오늘의 지상 교회 공동체가 그분으로 하여금 활동하시도록 해 드려야 할 내역이란 무엇인가?
수없이 들어온 바에 의하면 그분의 활동이란 공동체가 항구한 회개(metanoia)와 형제적 사랑에 의한 친교(koinonia) 그리고 봉사(diakonia)와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증거(martyria)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 첫번째 교회 공동체는 내부적으로도 그리고 외향적으로도 그러한 삶을 살았고 또 그러한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자 활력이 바로 성령이라고 체험했다. 말하자면 그러한 삶을 살게 하는 성령을 활동하시도록 하는 것이 공동체의 정신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첫번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오늘의 지상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
하지만 친교나 봉사 측면에 역점을 두는 경우 공동체의 정신은 자칫 여타 단체들의 정신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교회 공동체의 실상마저 곡해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여느 단체와도 본질적으로 다른 측면인 회개와 증거 측면에 역점을 두면서 교회 공동체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그 두 가지 측면은 친교와 봉사의 출발점이자 터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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