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사는 곳은 연일 여름밤의 음악회를 알리는 소식들을 현수막이나 벽보판에 전하고 있다. 오페라, 판소리, 가곡,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각종 합창제, 동서양의 클래식 콘서트들이 문화회관, 시민회관, 대학 강당, 공원 등에서 열리고 있어, 음악을 좋아하는 시민들은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있다. 더구나 대부분의 연주회가 무료여서 주최 측의 마음 씀과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음울하고 답답한 기사로 가득 찬 신문에서 이런 음악회 일정을 보면 여름 아침 나팔꽃을 보듯 신선하고 기운이 난다. 설레는 마음으로 연주회장을 가면 모르는 사람에게도 미소를 짓거나 말을 건네고 싶은 여유가 생긴다.
나는 음악회장에 가면 먼저 건물의 구조와 시설을 살펴본다. 건축미를 보려는 것도 있지만 나의 의도는 무엇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시설과 배려가 되어 있는지를 알고자 하는데 있다.
우선 안내자에게 승강기가 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잘 모른다』『없다』라고 하며 오히려 왜 묻느냐는 질문을 한다. 이 도시의 소위 대표적 음악회관들은 2층과 3층까지 좌석이 있는데 승강기는 물론 경사로도 없다. 화장실 시설도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고통스럽다. 점차 우울해져가는 마음으로 나는 계단을 세며 윗층으로 올라가 본다. 가파른 계단의 수가 거의 50개에 이른다. 담당자를 찾아가 1층에 장애인을 위한 좌석이 별도로 배정되어 있는지 묻는다. 놀랍게도 그들은 한결같이『그런 손님이 오시면 좋은 자리에 모십니다』라고 하던가, 『언제나 빈자리가 있으니 별문제가 없다』고 한다. 장애인을 위한 좌석 배정이나 표 할인은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안 된 곳에서 담당자의 의식을 찾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된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음악회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연주회장 실상이다. 연주자들이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안 된 곳에서는 연주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주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많다. 예술을 사랑하는 것은 허영이 아니라 일치와 조화를 찾으려는 내적 작업이다. 연주자도 청취자도 더 이상 흉내내는 시늉을 해서는 안 된다. 음악회와 청중의 질을 말하기 전에 누구와 같이 들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장애인에게 닫혀진 음악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시민을 위한 문화 행사가 아니다. 함께 들을 수 있는 배려가 안 된 연주회에서「선진」이라든가「문화」라는 말을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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