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마태11, 30)
TV연속극에 나오는 남자들은 어딘가 좀 모자라야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부인에게 주눅 든 남편과 당당하기보다는 약간 비굴해 보이는 남자들을 출연시켜 놓고 시청자들은 웃으면서 즐깁니다. 우연히 내가 본 드라마도 평소에 기를 펴지 못하는 남자들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모처럼 의기투합해서 계략을 꾸민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계략이 들통이 나는 과정을 그리면서 남자들을 바보로 만들 뿐 아니라 하나같이 부인한테 싹싹 빌고도 전보다 열악한 상태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편들에게는 아예 부인들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고 경고하는 교육적인 효과가 있을 것 같고 부인들에게는 통쾌한 대리만족을 즐기게 해 줄 것입니다. 독신자인 내게도 좋은 교육이 되었습니다. 그것은「결혼 안하길 참 잘했다」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잘못하고 거짓말하면서 전전긍긍하는 남편,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호기 있게 큰소리치고 집에 들어와서는 고분고분하다 못해 그저 굽실거리는 꼴을 보면 웃음이 나오는데, 이 웃음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못난 사람」, 또 하나는「나는 너보다 낫다」입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너무 지나친 것 같고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듯도 합니다. 연속극을 보는 시청자들이 대부분 여성들이라 그들의 구미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지, 아니면 작가들이 대부분 여성들이라 그렇게 되었는지 어쨌든 지금까지 남자들에게 눌려 지내 온 과거를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해서 충족되고 또 극중 인물을 통하여 대리만족을 누리는 면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연속극이란 그 시대 현실과 부합한 소재를 선택했을 것이니 세상에 어느 정도 그렇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식인 내 눈에는 뭔가 이상해 보이는 것이 한 둘이 아닙니다. 무거운 아기는 남자가 안고 가벼운 기저귀 가방은 약한 여자가 들고 따라가는 것은 공평하다고 치고, 시장 가는데 따라가서 부인이 산 물건을 들고 따라 다니며 짐꾼 노릇하는 것은 이해는 해도 공감은 안 갑니다. 옛날에는 부인이 음식을 장만하는 동안에는 남편을 부엌에 발도 들여 놓지 못하게 했는데 지금은 남편도 부엌에서 부인과 함께 뭔가를 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또한 맞벌이 부부로서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한다는 뜻에서 이해가 갑니다. 그래도 일을 꼭 같이 나눈다는 것은 어쩐지 각박한 느낌이 들고 부부간에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이상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계속 사랑하기로 결심하면서 결혼한 부부로서 함께 삶을 나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어차피 결혼은 서로에게 멍에이고 짐이기에 이를 기쁘게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멍에는 이미 멍에가 아니고 짐도 이미 짐이 아닙니다. 단지 사랑의 표현일 뿐입니다.
일생을 독신자로 사는 것도 멍에이며 짐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독신자로 살기로 서약을 했으며 육체적 욕망마저도 전능하신 주님께서 없애주셨으면 좋으련만, 계속해서 성(性)을 지닌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기에 자신의 육체적인 욕망을 다스리며 서약을 지켜야 합니다. 때로는 정신적으로 약해질 때도 있고 나이를 먹어 갈수록 심리적으로 허전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부인하지 못하는 짐입니다. 이 짐의 무게를 느낄 때에는 나는 주님께 대한 나의 열정이 식어버린 것이 아닌가 반성해야겠습니다.
역시 신앙을 가지는 것도 하나의 멍에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신앙생활은 짐임에 틀림없습니다. 신앙을 갖게 된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또 신앙생활을 해 나가며 얼마나 자신의 이기적인 삶을 정화시켜 나가고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키워 나가느냐에 따라서 신앙이 거추장스런 멍에가 되기도 하고 신앙생활이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부부생활이든 독신생활이든 모든 신앙생활이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하는 것이라면 남들이 볼 때에 바보처럼 보이고 때로는 웃음거리가 될지라도 전연 개의(介意)치 않을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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