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를 창설하고 초기 교회를 이끌어나간 이들은 대부분 권철신(암브로시오)문하에게 학문을 닦은 인물이거나 적어도 그와 가깝게 지내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아깝게도 그 대부분은 순교자의 반열에 올라있지 않다. 권철신 자신은 물론, 가장 먼저 천주교를 신앙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이벽(세자 요한)과 이승훈(베드로)이 그렇고, 조선의 가장 위대한 학자로 손꼽히는 정약용(사도 요한)이 그렇고, 권철신의 아우인 권일신(프란치스코 사베리오)과 위대한 순교자들의 부친인 이윤하(마태오)도 그렇다. 반면에 윤유일(바오로)과 이존창(李存昌·루도비코 곤자가)같은 경우는 교회를 위해 끝까지 헌신하다가 혈세를 받게 된 경우에 속한다. 다만 이존창은 일찍이 순교할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놓쳤다가 훗날에서야 다시 기회를 얻게 된 점이 윤유일과 다르다.
이존창은 1752년 충청도 예산 땅 여사울(예산군 신암면 신종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떤 기록에는 그가 평민의 자손이었고, 어떤 기록에는 천민 출신이었다고 한다. 다만, 교회 창설 이전인 1776년 무렵부터 남인의 학자 권철신과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학문을 배웠다는 점에서 볼 때, 평민이라 하지만 몰락 양반이거나 아니면 향반(鄕班)축에 끼지 않았었나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후 그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 직후 권일신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하게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의 활동은 실로 눈부셨고, 그 결과는 곧 내포(內浦)공동체의 설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공동체는 몇몇 양반, 많은 평민들, 그리고 주변의 하층민들로 구성되었는데, 원시장(베드로)과 원 야고보, 김진후(비오) · 박취득(라우렌시오)등의 인도 아래 예산 · 아산 · 당진에서 시작되어 점차 충청도 내륙 지방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이제 여사울에 있는 이존창의 집은 모여드는 신자들의 집회소이자 숙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은 교회 지도층에 끼어 1786년 이래 약2년 동안 지속된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에서 신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에게 닥친 첫 번째 시련은 1791년의 신해박해였다. 이 박해로 최초의 순교자들이 탄생할 무렵, 이존창 또한 그의 명성 때문에 이내 체포되어 공주 감영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형벌과 회유가 번갈아 계속되면서 그의 마음은 흔들리게 되었고, 마침내 천주교를 요술이라고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존창의 배교를 여러 가지로 해석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마음에 진실한 회두(回頭)가 있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실제로 그는 석방된 후 천주교의 모든 가르침을 다시 지키기 시작하였고, 본분을 잃지 않기 위해 1791년 말 홍산(洪山)땅으로 이주를 결심하였다.
인근의 3백여 세대 교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족들과 교우들을 모두 잃는 세속의 아픔을 딛고 홍산으로 간 그는 1795년 초 주문모(야고보)신부가 서울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시 전라도 고산(高山)으로 이주하였다. 주 신부가 지방을 순회할때 거처할 비밀 장소를 마련해 놓으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 다음 4월에 상경하여 주 신부를 만난 뒤 전라도로 신부를 모셔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도 오래 가지 못했으니, 충청 감사의 명으로 그 해 말에 다시 감영에 갇힌 때문이었다. 이것이 그에게 닥친 두 번째 시련이었다.
공주 감영에서 여러 차례 형벌을 받던 중 그는 다시 마음이 약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는 그의 활동을 염려하여 천안에 연금시켜 놓았다. 그러던 중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이존창은 3월 18일에 공주로 이송되어 문초를 당한 뒤, 서울로 압송되어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고향에서 처단하라」는 해도정법(該道正法)의 원칙에 따라 다시 공주로 이송되어 4월 10일(음력 2월 28일)에 마침내 혈세를 받게 되었다.
이때 그의 목은 여섯 번째 칼질을 받고서야 떨어졌는데, 친척들이 그의 시체를 거둘 때는 머리가 목에 단단히 붙어 있었고, 단지 실날 같은 흉터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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