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상담을 하러 가고 있는 중3 친구들로부터 받은 장미꽃에 대한 보답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모 학교의 상담실로 향했다. 첫 만남을 갖던 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이 학생들에게 던졌었다. 『자, 우리의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만일 투명인간이라면 무엇을 하고 싶니?』. 예기치 않은 질문을 받은 학생들은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 보았다.
『마음껏 놀고 싶어요!』『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곳에 가고 싶어요』『지나가는 사람을 이유없이 한 대 탁 치고 싶어요』
상담실에서 학생들은 미소를 가득담고 나를 환영해 주었다.
『수녀님, 왜 그동안 저희들을 만나러 오지 않았어요? 상담실에서 수녀님을 기다렸는데, 바빠서 못 오신다고 할 때마다 얼마나 섭섭했는지 몰라요』
『약속을 변경시켜서 우리에게 실망하셨어요? 그래도 우리는 약속대로 이번 중간고사에서 성적을 올렸어요. 영희는 20점, 정숙이는 18점, 그리고 수경이는 30점이나 올랐어요』
이 학생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였다. 가출 후 이 학생들은 가정과 학교에서「문제아」로 취급받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몰려 다니지 않도록 주의를 받고 있었고 친구들에게는「좋지 못한 모델」로 제시되고 있어 학교를 싫어하고 있었다.
좀 더 친숙해지자 가출 후의 여러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가출 후 집에 돌아오니까 병 때문에 운수업도 그만두고 방에만 머무르고 계신 아버지께서 저를 공설운동장에 데려가시더니 각목으로 때리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아빠가 무섭고 집에 있기가 싫어요』
『선생님은 또 어떻구요. 매일 방송으로 불러대고 화장실 청소시키고…! 우리가 학교 망신을 시켰대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요. 자신이 없어요. 지금 성적으로는 고등학교에도 못갈텐데 뭐하러 학교에 다녀요? 시간 낭비인것 같아요. 창피하고 귀찮아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요』
물질과 교육환경이 훨씬 좋아진 이 시대에, 왜 이들은 이렇게 방황하고 있을까? 왠지 지루하고 희망이 없는 그들의 일그러진 표정은「우리들에게 삶의 이상을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어디론가 훌쩍 떠나 찾아가고 싶은 곳은『잘한다! 넌 해낼 수 있어! 참 착한 아이구나!』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