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있는 사람은 새겨 들으시오』(마태 13, 9)
잘 아는 사람의 혼인미사에 참례한 적이 있습니다. 먼 길을 승용차로 갔기 때문에 피곤하기도 했지만, 주례신부님의 강론이 장황하고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하객들에게는 결혼하는 신부의 부모와 자신과의 친분이 두텁게 된 경위로부터 시작하여 새 신부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기와의 관계를 칭찬과 더불어 소상하게 소개하시더니, 신혼부부에게 혼인교리에서나 가르칠 만한 전반적인 이론을 조목조목 체계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이때가 나의 취침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편은 부인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부인은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 줬습니다.
이때도 건성으로 듣기는 했지만 졸지는 않았습니다. 시골본당이라 시간에 쫓기지는 않는다 하더라고 족히 40분 이상의 강론은 좀 심했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입담이 좋으신 분이라 마지막 부분에서는 참석자들이 웃기도 하고 재미있어 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좀 더 오래 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듣기에 지쳐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신혼부부에게 「저 얘기들이 귀에 들어갈까?」의심하고 있었으며, 그 고루한 말씀들을 누가「몰라서 잘못 사는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생각하며 짜증스러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발 빨리 끝이나주길 빌고 있었습니다. 나의 몸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귀는 열려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여지가 없었습니다. 마치 바윗돌 위에 떨어진 씨앗과 같았습니다. 바윗돌위에 씨앗이 떨어지면 바위는 씨가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떨어진 씨는 강렬한 햇살에 금방 말라 버릴 것입니다.
대화를 하면서도 듣지 않으려는 사람은 참 많습니다. 지난날의 어떤 사건이나 소문 때문에 선입관을 가지고 듣는 사람, 지레 짐작을 하고 들을 필요도 가치도 없다고 판단해 놓고 듣는 사람, 미리 변명이나 핑계를 대며 방어자세를 취하는 사람, 자기의 할 말이나 일을 생각하며 건성건성 듣는 사람, 말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애쓰며 듣는 사람, 설득을 시키려 한다든지 어떤 다른 목적을 가지고 듣는 사람, 등등은 모두 실제로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듣지 않으려고 하지는 않는지 반성할 일입니다.
나는 요즈음 성서 독서를 잘 못합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성서를 읽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이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할까를 생각하느라고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특히 가톨릭신문에 무슨 말을 써야 할까 생각하느라고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잠심도 못하고 따라서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래서 한 가지 배운 것은「말도 하기만 하면 바닥이 난다. 따라서 많이 들어야 할 말도 많아지고 쓸 만한 말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돈을 쓰기만 하고 벌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영락없이 거지가 되듯 지금의 내 심정은 이미 거지가 된 듯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거지인 줄도 모르고 자꾸만 돈을 쓰려고 하다 보면 더욱 조바심이 생기고 나아가 남의 것을 빌려 쓰거나 훔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듣다」는 낱말은「누가 누구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는 뜻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듣는 행위와 더불어 들었다는 표시가 나야 합니다. 그 표시는 들은 대로 실행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즉 들은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나는 어릴 때에 부모님께로부터『제발 말 좀 잘 들어라』는 꾸중을 자주 듣곤 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시키시는대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효과의 입장에서는 특히 약(藥)일 경우에는「효력이 있다」는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이 병에는 이 약이 잘 듣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진전되어 뇌물의 경우에까지도 사용합니다. 또 효력이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 사람이 이 말을 하면 화를 낼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그 말을 해서 벌컥 화를 내는 것을 보고「약발이 잘 듣는다」고 하면서 내심 재미있어 합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으면「약발」이 듣고 약효가 나야 할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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