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13.30)
서울역에 내리자 마자 맛있는 국수집에 있다기에 친구를 따라 갔습니다. 지금의 대우빌딩 근처라고 여겨지는 곳이었습니다. 한참 국수를 먹고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어디 갔다가 큰 소리로 떠들면서 들어왔습니다. 종업원 아주머니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그만하니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같이 간 친구가 호기심에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대강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얘기 했습니다.
이웃에 사는 아이가 놀다가 넘어져 얼굴을 어디에 부딪쳤는데 피를 많이 흘렸으며 그 집에 함께 사는 박양과 함께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 집은 여러 사람이 세들어 사는데 아이 아버지는 서울역에서 승객의 짐을 날라다 주는 일을 하며 어머니는 남의 집에 일을 나가므로 낮에는 아이가 혼자 집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 집에 세들어 사는 여러 아가씨들이 돌아가며 아이를 돌보아 준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박양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돌보아 왔기에 거의 박양이 키우다시피 했답니다. 그 뿐 아니라 아이 어머니가 저녁까지 일을 하고 밤에 돌아오므로 그 집 살림을 다 살아주다시피 한답니다. 낮동안에는 별로 손님이 없기 때문에 아이가 어질러 놓은 방도 치워주고 널어 놓은 빨래도 걷어 손질해주고 심지어 김칫꺼리를 사다 놓으면 다듬어서 김치도 담궈준다고 했습니다.
박양이 없었다면 아이 어머니는 아이 때문에 일하러 나갈 생각을 감히 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 했습니다. 비록 창녀생활을 하고는 살지만 다른 집 아가씨들과는 달리 모두가 가족처럼 살기 때문에 보기 좋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 밖에 없는 아이가 다쳐서 피를 흘리게 되니까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특히 박양이 당황해 어쩔줄 몰라 하므로 국수집 주인 아주머니가 병원에까지 따라가서 치료한 후, 이제 박양과 아이는 집으로 가고 자기는 가게로 돌아오는 길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박양은 친척도 부모도 없는 것 같아 명절에도 아무데도 안가고 집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또 저렇게 맘씨곱고 착하고 인물도 그만하면 예쁜애가 어쩌다가 이런 곳에 와서 저런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안타깝고 아깝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이 얘기를 들을 때는 그저 그런 사람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 갔습니다.
그 후 수년이 지나서 나는 공동체 묵상회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하루는「밀과 가라지」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는 밀과 가라지를 식별하라는 작업이었습니다. 나는 평소에「창녀가 사회악」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라지를 식별하면서 얼른 창녀를 떠올렸습니다. 그 순간, 전에 국수집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나서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라지를 가려 내는데 있어서 어떤 사건이나 어떤 집단을 말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개인은 우리가 가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지고 보는 우리 눈에 아무리 가라지 같이 보이는 사람도 결코 그렇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전에 예수님이 나더러 이세상 가라지를 싹 다 뽑아 불에 태우라고 했더라면 나는 여지없이 창녀들을 모조리 처치해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을 것입니다.「밀과 가라지를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게」하신 주님의 결정은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주일 미사는 빠지지 않지만, 좋은 집에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비싼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니며 먹고 안락한 생활을 하면서도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무관심하며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비록 창녀생활을 하더라도 어려운 처지에 서로 도우고 사랑을 나누며 화목하고 평화롭게 사는 그들이 예수님 말씀따라「먼저 천국에 다가가 있는 사람들」임에 들림없습니다.
『주님, 나는 누구를 향해서도 가라지로 단정할 권리가 없습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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