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明) - ‘지속가능한 생태공동체, ZEGG(제그)’
일행은 이번 견학을 통해 독일 탈원자력발전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삶의 현장을 찾아봤다. 그중 하나가 바로 브란덴부르크주 벨치히(Belzig)에 위치한 친환경 생태공동체 ZEGG(제그)다. ZEGG는 ‘지속가능한 생태공동체 모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일행을 안내한 이나 메이어 슈톨(Ina Meyer Stoll)씨는 “우리는 자연에서 원칙을 배운다”고 밝혔다. ZEGG 구성원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고민한다. 공동체가 가진 에너지 효율화 방안에서도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일행이 ZEGG를 방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동체 곳곳에서 에너지 절약을 위한 아이디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은 동서독 통일 전, 국가정보원 교육연수원으로 쓰이던 곳으로 공동체는 옛 건물을 허물거나 새로 짓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집집마다 처마 밑에 빗물받이와 물통이 연결돼 있어 빗물을 생활용수로 활용한다. 또 건물 단열을 위해 지붕에 식물을 키우거나 창문에는 이중창을 달았다. 낡은 건물의 증·개축(리모델링) 시 가장 신경 쓰는 부분 또한 단열이다.
햇빛이 잘 드는 건물에는 태양광 발전 시설을 부착해 전기를 생산한다. 생산량은 공동체 전체 전기 사용량의 80%에 이를 정도다.
공동체 난방은 직접 설치한 보일러 시스템을 이용한다. 태양열, 펠릿(나무 조각), 천연 혹은 바이오 가스가 혼합돼 열을 낸다. 펠릿은 나무를 일부러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목공소에서 배출되는 나무 조각, 톱밥, 나무껍질 등을 사용하고 있다. 공동체 에너지 담당 토마스씨가 축축하게 젖은 펠릿을 한 움큼 쥐어 보였다. 토마스씨는 “젖은 펠릿은 천천히 타기 때문에 연료 효율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날씨가 추워지거나 온수 사용량이 많을 때는 자동화시스템을 통해 난방과 온수를 적절히 공급한다. 한 번에 1.5톤짜리 나무를 통째로 넣어 화력을 올리거나 하루 최대 48㎥ 온수를 공급할 수 있다. 에너지 효율을 위한 공동체의 집중적인 관심과 노력을 읽을 수 있는 현장이었다.
공동체를 둘러본 일행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에너지 시스템을 찾아나가는 공동체의 노력이 돋보인다”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함께 순행하는 공동체가 지속가능한 생태공동체”라고 전했다.
▲ 일행의 안내를 맡은 이나 메이어 슈톨씨가 ZEGG 공동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ZEGG 내 열병합 발전소.
#. 암(暗) - ‘브레멘 운테르베저(UnterWeser) 원자력발전소’
독일이 탈원자력발전을 선언했지만 문을 닫는 원자력발전소의 뒤처리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가동을 멈춘 브레멘 운테르베저(UnterWeser) 원자력발전소도 마찬가지다.
일행은 집어삼킬 듯 달려드는 매서운 바람을 뚫고 발전소를 찾아갔다. 발전소 측과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내부까지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멀리서나마 현재 발전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저(Weser)강 강둑 위에 올라서자 발전소의 커다란 몸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추긴 했지만 수년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지금 멈췄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어요. 연방정부 정책에 따라 언제든 다시 가동될 수 있으니까요.”
녹색당 지역 대표 오트 마이어(Ott Mayer)씨의 설명을 듣는 일행의 얼굴에 사뭇 긴장감이 감돌았다.
발전소 인근 브라케 지역 주민 홀스트·아스트리드 쿠팔 부부가 작은 현수막 하나를 펼쳐들었다. 현수막 위 ‘시민이여! 우리 아이들이 저렇게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 홀스트·아스트리드 쿠팔 부부가 ‘시민이여! 우리 아이들이 저렇게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뒤쪽에는 가동을 멈춘 운테르베저 원자력발전소가 보인다.
부부는 아이의 병과 원자력발전소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연방 정부 도서관 등 자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아무도 원자력발전소 문제를 증언해주려 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우리 부부가 직접 나서게 됐습니다.”
부부의 눈물겨운 노력이 계속 됐지만 필요한 통계자료는 비공개 자료라며 접근조차 막혀 있었다. 2010년 법정 소송을 통해 일부 자료를 확보하기는 했지만 발전소 측의 보상은 여전히 미지수다.
부부는 원자력발전소가 멈출 때까지 현수막과 반원자력발전 그림이 그려진 풍선을 들고 거리에 나서 원자력발전 반대 운동을 펼쳐왔다. 남편 홀스트 쿠팔 씨는 “원자력발전소는 사고와 방사능 누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며 “이곳이 다시 발전과정에서 나온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방폐장으로 사용되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선다”고 말했다.
일행은 자리를 옮겨 지역 주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주민들은 원자력발전이 불러온 막대한 환경오염과 피해사례를 들려줬다.
“고온으로 바뀐 냉각수가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어가 강 속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어요. 더운 여름 강물의 3분의 2를 냉각수로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강이 바다까지 연결돼 있는데다 만조 때가 되면 강 수위가 달라지는데 혹시나 오염된 강물이 마을을 덮칠까 걱정이에요.”
주민들은 직접 반원자력 모임을 결성해 피해사례를 조사하고 연방정부에 보상과 자료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벌여왔다. 지난해 체르노빌 사고 25주기를 맞아 인근 주민 8000명이 발전소 반경 100km를 에워싸고 인간사슬을 만드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인근 지역에까지 확산된 집회는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원자력발전의 위험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반원자력발전 그림이 그려진 풍선.
▧ 독일 탈원자력발전으로 가는 길, 환경단체의 움직임
#. 환경자연보전단체(BUND)
일행은 독일 전역에서 반원자력발전을 중심으로 생태·자연보호 운동을 펼치고 있는 환경자연보전단체(BUND, 분트) 브레멘 지부를 찾았다.
BUND는 직접 집회를 꾸리고, 지역사회 에너지 대안을 설계하는 등 적극적인 반원자력 운동으로 독일 연방 정부의 탈원자력발전 선언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아울러 시민들이 지분 참여를 하는 시민 자본의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BUND는 교사, 학생, 학부모, 학교 건물 관리인 등이 전 방위로 참여하는 에너지 교육과 에너지 효율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BUND 대표 클라우츠 클리첼 씨는 “연방정부가 탈원자력발전을 선언했지만 BUND에게는 너무 느리게만 느껴진다”며 “BUND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원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효율화, 최적화를 통해 더 이른 시일 내에 탈원자력발전이 가능해지도록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BUND는 지역 사회 종교계(개신교) 공동체와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재생에너지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개신교 공동체의 이 같은 적극적인 동참은 일행들에게 탈원자력발전을 위해 가톨릭교회가 가져야할 역할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 BUND 구성원, BUND 브레멘 지부 앞에서 기념 촬영.
#. 그린피스(Green Peace) 본부
그린피스(Green Peace)는 독립적인 글로벌 캠페인 단체로 전 세계 환경보호와 평화증진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일행은 함부르크시에 위치한 그린피스 본부를 방문, 스벤 테스크(Sven Teske) 신재생에너지 총괄국장을 만났다. 테스크 국장은 한국판 ‘에너지혁신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경향을 분석해 미래 상황을 예고하거나 목표를 세우고 목표에 따를 과정을 설계하는 등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 작성하며 현재 재생에너지 사업과 발전소 현황, 세계 에너지 시장 동향 등을 참고로 한다. 그린피스는 국내 연구 용역을 통해 국제 지표와 현지 상황 간의 차를 검토한 후 오는 4월 시나리오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테스크 국장은 시나리오 작업과 함께 우리나라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건물의 비효율적 냉난방 구조와 단열 상태를 개선하고, 운·수송 분야 효율성을 더욱 증진하는 등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통해 국내 탈원자력발전의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