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극의 방음편이 말하는 음란함은 단순히 성(性)적인 음란함만을 이르지 않는다. ‘더러운 재미를 즐기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막지 못하는 것’이 음란이라 이르는 방음편은 저술 당시에 일부다처제에 맞서 일부일처제의 정결을 설명하며 혼인성사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가르쳐왔다. 칠극은 오늘날 성의 상업화, 이혼의 보편화 등으로 날마다 정결의 중요성을 상실해가는 우리 사회에도 일침을 놓는다. 인류 구원의 길을 걸은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사순시기, ‘하느님이 정하신 바른 길’을 걸으며 부부의 사랑을 키워가는 박영철(유스티노·60·춘천교구 동명동본당)·허은숙(유스티나·59)씨 부부를 만났다.
“음란한 욕망이 너희를 공격해 올 때 자신의 덕의 힘을 믿는다면 결코 그것과 맞서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능력을 믿어서 도와주기를 빌고 다시 마음의 공을 더한다면 그제서야 그것과 맞설 수가 있을 것이다.”
오늘도 부부는 펜을 손에 쥐고 편지지에 글을 채운다.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에게 편지를 쓴 지 어느새 22년이다. 매일 서로에게 쓰는 부부의 편지는 서로에 대한 정결을 지키고 일치를 이루는데 큰 도움을 줘왔다. 어떻게 보면 별게 아닐 수 있는 편지쓰기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짧게는 일주일만에 그만두기도 했고, 100일 동안 꾸준히 쓰다가도 포기한 적이 있었다. 이들 부부의 의지만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1990년 대림시기, 하느님 안에서 새해를 맞으며 부부는 매일 서로에게 편지를 쓰기로 하느님과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오늘 이 순간까지 지켜왔다.
“저희는 작은 걸 정해서 실천해요. 작게 하느님 뜻에 발을 들여놓고 실천하도록 노력하며 살다보면 그게 습관이 되고 몸에 배게 돼요. 결국은 그게 부부의 삶이 돼서 혼인생활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이들 부부는 해마다 목표를 3가지씩 정한다. 잘 사는 부부, 행복한 부부, 하느님 뜻에 맞게 사는 부부. 이런 이상적이고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정말로 사소하고 실천적인 목표다. 아침에 일어나 ‘찬미예수님’이라고 인사하며 안아주기, 미사 중 주님의 기도를 할 때는 서로 손잡기. 그리고 거기에 ‘매일 서로에게 편지쓰기’는 늘 빠지지 않는다. 이들 부부는 정말 사소하고 작은 실천이 부부생활을 이끄는 열쇠라 믿는다.
“음욕은 세찬 감정의 불길이다. 그런데 이 불길은 처음 일어날 때는 비록 미미하다고 하더라고 그것을 소홀히 하면 반드시 거세게 타올라 참으로 끄기가 어렵게 된다.”
부부의 관계를 깊게 해주는 것이 작은 실천이었지만 반대로 부부를 갈라서게 하는 것도 사소하고 작은 일에서 나오곤 했다.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이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또 남편은 쉬는데 나만 일할 때, 집안일을 도왔는데 알아주지 않을 때 상처를 받기도 했다. 나와 너무 가까운 사람이기에 나와 같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생각에서 상처가 시작됐다. 정말 사소한 일을 계기로 시작된 싸움이었지만 사랑하는 사이가 미워하는 사이로 변하고 함께 살면서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부부싸움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부부싸움도 일종의 대화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면서 싸워야 한다는 거죠. 상대방을 나와 같이 만들려 하거나 무조건 참기만 한다면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매일의 편지와 대화로 늘 서로 소통하는 이들 부부는 이제 더 이상 이런 일들이 괴로운 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물론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다툼을 피할 수 있게 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편지를 쓰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받은 상처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만 이제는 그 과정에서 치유를 얻게 됐다. 편지를 통해, 다툼을 통해 서로 소통하면서 아픔을 겪을 때마다 일치를 느꼈다.
▲ 박영철·허은숙씨 부부는 끊임없이 각자의 성을 성숙시키며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영철·허은숙씨 부부가 편지를 읽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박영철·허은숙씨 부부가 함께 기도하고 있다.
“천주께서 사람들에게 결혼을 시키신 것은 그들이 부부가 되어, 서로를 돌보아주고 사랑하는 이로운 일을 가지게 하려는 때문이었다.”
이들 부부가 말하는 부부의 일치는 부부가 서로 똑같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남편은 남성으로서 남성스럽게, 아내는 여성으로서 여성스럽게, 각자 성숙해 나가는 가운데 부부로서 일치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치를 위해서 절제하며 정결의 덕을 지킨다.
“성행위만을 따로 떼어 음란하게 여기곤 하는데 성은 부부, 즉 남성과 여성이 몸과 마음, 정신으로 소통해 일치할 수 있도록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에요. 대화나 다른 소통이 그렇듯 일방적이어서도 안 되고,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또한 이렇게 절제 안에서 각자의 성을 충실히 키워나가는 일은 인성의 성장으로도 이어졌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해결하는 성격이었던 박영철씨는 결혼생활을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정의로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 있게 됐고, 자신을 포함한 주변이 늘 완벽해야 했던 허은숙씨는 조금 서툴고 불완전해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부부는 상대방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로움을 느꼈다.
부부의 일치는 부부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이들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이 세상으로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깝게는 부부의 조언으로 화목해지는 부부의 수가 점차 늘어났고 2011년 5월에는 ‘가정의 달 및 부부의 날 기념식’에서 여성가족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법원에서 조정위원으로 초빙돼 이혼하려는 부부를 위한 상담과 조정활동도 하게 됐다. 이들 부부의 결혼생활이 혼인성사의 표지로서 향기처럼 퍼져나간 것이다.
“하느님은 혼인성사에서 배우자를 통해 하느님께 함께 오길 바라신다는 걸 느꼈어요.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건 아니죠. 예수님도 우리와 일치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노력하셨던 것처럼 저희 부부도 끊임없이 노력해 나갈 것 입니다.”
▲ ▼ 박영철·허은숙씨 부부가 함께 써온 편지들. 2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에게 부부는 일상에서 있었던 일, 독서와 복음말씀 등을 주제로 매일 편지를 써왔다.
■ 칠극 ‘방음(坊淫)’
칠극, 제5편 ‘방음’은 성욕이 가져오는 부정적 측면을 설명하고 그리스도교의 윤리관을 제시한다. 여기에서는 음란함을 극복하는 데는 마음의 정화가 선행되어야 하고 하느님의 은총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방음편은 사람이 지키는 정결에 부부 사이의 정결, 과부와 홀아비의 정결, 동정(童貞)자들의 정결을 말하면서 일부일처(一夫一妻)의 정결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