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1월 10일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했다. 상상조차 할 수 있는 일이었던가.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니. 그러나 전쟁은 현실이었고 민족과 더불어 한국 교회의 수난과 고통이 시작됐다. 50년 5월 25일자를 발행한 천주교회보는 전쟁으로 다시 인쇄기를 멈출 수 밖에 없었고 그 기간은 4개월여 에 달했다.
동족상잔의 엄청난 비극과 혼란기 속에서도 천주교회보는 그해 11월 10일자로 이어졌다. 11월 10일자 천주교회보 2면은 6.25 발발과 더불어 희생된 목자들을 비롯 침탈된 전국 교회 현황들을 소개함으로써 전란의 참담함을 실감있게 전해주고 있다.
「양을 위해 희생된 거룩한 목자들」이란 제하의 이 기사는 방 주교 안 주교 구 주교 등 세 분 주교를 비롯한 성직자들의 피랍사실과 학살, 행방불명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확인된 사항을 중심으로 상보하고 있다. 또한 서울을 비롯 전재(戰災)에 직면한 각 교회의 긴박한 상황을 거의 한 면에 걸쳐 알려주고 있다.
「순직(殉職)의 주교 신부와 전재(戰災)교회」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기사내용을 살펴보자. 『이번 전란의 발생으로 우리 한국 가톨릭이 입은 인적 물적 손해는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그 생명을 버리느니라」하신 성경말씀에 따라 이번 전란의 발생후 많은 신자들이 미처 피란할 시간도 없이 적의 침입을 받아 적의 수중에 들자 자기 혼자 양떼를 버리고 떠나 오시기가 차마 애처로워 끝까지 착한목자의 임무를 다 하시고자 직무를 사수하시다가 마침내 그 생명을 희생으로 버리시게 되고…』
이어 보도는 『교황사절 이하 세위 주교를 납치당하는 비분과 함께 적에게 잡히어 피살당한 성직자가 4명, 납치되어 끌려가신 주교와 신부의 수가 23명, 교우중 교회단체 간부가 13명, 행방불명된 성직자가 10명』이라는 사실과 함께 각 지역 교회의 피해상황을 상보하고 있다. 물론 이는 확인 가능한 당시의 수치일 뿐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53년 5월 15일자 보도는 북한의 공산정부 수립과 한국전쟁으로 북한에서 투옥된 성직자 수도자 수가 1백30여 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그중에는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와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초대원장이었던 장정온(앙네따ㆍ평양 메리놀회 수녀원장)수녀도 포함되었고 이중 홍 주교는 행불자로 장 수녀는 피살당했음이 확인됐다.
특별히 한국전쟁으로 포로가 되었던 수많은 성직 수도자들은 북녘으로 끌려가는 이른바 「죽음의 행진」을 통해 희생되었고 살아서 귀환한 이는 불과 몇 명이 되지 못했다.
불과 수년 사이 이 땅의 교회는 초토화 되었다. 성직자 수도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은 피살되거나 납치되었고 교회 건물과 성물들은 무참히 파괴되었으며 훼손되었다. 적어도 북녘에서 교회와 더불어 그와 관련한 모든 것들은 자취를 감추어 버린듯 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흘렀다. 반세기의 세월이 무심히 흘러갔지만 동족상잔의 비극이 가져다준 아픔과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 교회는 민족의 화해라는 엄청난 숙제를 현실 앞으로 끌어내는 와중에 있다. 내 가족 내 핏줄을 무참히 희생당한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가라앉은 분노의 앙금을 걸러내는 일이 바로 교회의 몫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길이 힘겹고 고단한 길임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울러 교회는 그길을 가야만 한다는 사실도 새삼 강조가 필요없을 것이다.
스승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 길을 걸어가시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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