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로부터 수탈을 당했던 이들이 해방 후 51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그들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다.
일본 교또부(京都府) 우치(宇治)시 우토로마을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우토로마을의 주민들은 현재 이 땅의 소유주인 서일본식산으로부터 철거 통지서를 받고,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으나 승소할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
땀과 눈물로 지켜온 이들의 땅, 이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지켜온 땅에서 계속 살려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것은 일본이 져야 할 최소한의 보상이요 책임이다.
「우토로」문제란
교또부 우치시 이세다마치(伊勢田町) 우토로는 재일 한국 조선인 80세대 3백80명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부동산 등기부상의 토지소유자 「일본차체」(닛산자동차)가 주민들을 무시하고 부동산 업자인 「서일본식산」에 토지(6천4백평)를 매각하여 이 회사가 주민들을 상대로 철거 및 명도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토지권 소유가 서일본식산으로 옮겨지기까지에는 민족적인 비극(?)이 숨어있다. 닛산자동차는 처음 이 토지를 1987년 당시 우토로마을의 동장이었던 조선인 허창구씨에게 매각을 한다. 닛산자동차는 허씨와 토지매각 수순을 밟으면서 한편으론 종전후 우토로 주민들의 소원이었던 수돗물 공사를 시작, 주민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허창구씨가 닛산자동차로부터 토지를 매각, 팔아넘긴 서일본식산은 유령회사로 회사주가 누구이며, 심지어 주민들은 허씨와 닛산자동차가 토지를 매각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라는 증언을 하고 있어 의혹을 지울 수 없게 한다.
현재 서일본식산의 대주주는 개인이 아니라 「가나사와 토건」이라는 회사로, 결국 다시 소유주가 바뀐 실정이다. 즉 허창구씨와 닛산자동차가 다시 토건회사에 이 땅을 매각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우토로는 일본의 침략전쟁 당시 국가와 기업이 공동으로 추진한 국책사업을 위해 끌어모은 조선인 노동자(당시 1천3백명)의 집단 숙식처였다. 일본의 패전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고 한 푼의 보상도 없이 가축이나 살만한 함바에 그대로 방치되었다. 조선인들은 살아가기 위해 그 자리에 부락을 건설하고 비바람을 견디며 우토로 토지를 접수하려는 미군에 맞서 싸워, 땅과 그들의 생활을 지켜온 역사를 갖고 있다.
우토로의 재일 한국, 조선인의 전후처리, 전후보상은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아울러 땀과 눈물로 지켜온 재일 한국 조선인들이 자기가 지켜온 땅에서 계속 살려고 하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것은 일본이 져야 할 최소한의 보상이요, 책임이라는게 이 곳 주민들의 주장이다.
우토로 동네회 회장 김교일씨는 『국책회사를 인수하고 닛산자동차의 큰 계열사로 성장한 일본차체는 과거의 역사적 책임과 토지매각으로 인해 발생한 우토로 토지문제의 중대함을 자각하고 우토로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의 노력을 성실히 해나가야 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주민들 역시 『일본 정부도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반세기에 걸쳐 고통스런 노동에 시달려온 우토로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책임을 져야 된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이 주목되고 있다.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
일본은 지금부터 56여 년 전 1940년 4월 2천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를 동원한 교또 군사 비행장 건설공사를 시작했다.
비행장 승무원 양성소, 항공기제조 공장 등 약 1백만평의 대규모 공사가 벌어졌고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 징용돼, 처절한 삶을 이어나가야 됐다. 우토로의 조선인의 역사는 바로 이때로부터 시작된다.
이 공사를 책임진 국책회사인 「일본 국제 항공 공업주식회사」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가축이나 살만한 함바(공사장 가건물)에 거주케하며, 인간 이하의 학대를 했다고 한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패전으로 조선인은 독립, 해방됐고 우토로에서도 해방의 기쁨으로 밤을 밝혔다. 그러나 비행장 건설공사의 중지로 1천3백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실직됐고, 일본정부와 국책회사 어디로부터도 아무런 보상없이 방치됐다. 타국만리에서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이들은 꿈을 어디에서도 보상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강제매수된 1백만평의 광대한 국책회사 소유의 토지 가운데 공장지역은 미군이 접수한 이후 관리방침에 따라 민수공장으로 전환되어 일반회사에 불하됐다. 그 회사는 「일국공업」으로 이름을 바꿔 버스의 차체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우토로의 조선인들에게는 일자리가 주어지질 않았다. 패전후 일본인들의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철저히 자신들이 강제 징용한 조선인 노동자들을 차별했다고 한다.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갈 여비도 없어, 우토로에 눌러앉은 대부분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이때부터 지금까지 막노동판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했다. 우토로 주민들은 살아가기 위해 함바위에 집을 짓고 비바람을 이겨내며 살아야 했다.
온갖 고생을 하며 일궈냈던 땅. 그러나 이 땅은 1962년 8월 「일산차체」가 등기부상의 소유자가 되면서 토지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토지분쟁의 발단과 현황
주민들 대부분이 폐품 수집과 일용노동자로 살고 있는 우토로 마을주민들은 고달프지만 그래도 동포들끼리 평안한 삶을 살아왔다. 이런 이들에게 청천하늘에 날벼락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1988년 12월 부동산 업자인 (유)서일본식산은 토지소유자로서 퇴거를 요구하는 문서를 우토로 주민 전부에게 송달하면서 우토로의 토지분쟁이 시작됐다. 노동자로 징용된 이들, 자신들의 노동의 대가를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가축들이나 살만한 함바에 버려졌던 이들이 고난을 이겨가며 가꾸어놓은 삶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당연히 주민들이 이에 응하지 않자 부동산 업자는 토지 명도소송을 법원에 접수, 현재까지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 소송은 올해 안에 심의가 이루어지고 연내나 길으면 내년초에 판결이 날 것이라고 한다.
재판을 맡은 일본인 변호사는 『주민들이 승소할 가능성은 10%밖에 되지 않는다』며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우토로 주민들 생각도 같다.
그러나 50여 년을 살아온 삶의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내쫓길 위기에 처한 주민들은 『우리는 쫓겨 갈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우토로 문제가 근본적으로 강제징용에서 비롯된 만큼 일본 정부는 강제 징용자와 그 후손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결단을 내려달라는게 이들의 요구다.
김교일 회장은 『일산차체가 서일본식산에게 땅을 매각하기 전부터 분명히 우리들은 땅을 우리에게 팔아달라는 요청서를 여러 번 낸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비밀리에 땅을 매각한 일산차체의 비윤리적 행위에 분노를 느낀다』고 토로하면서 『우토로 마을의 주거권 문제는 분명 전후 배상문제인 만큼 일본정부의 책임도 크다』며 일본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우토로 문제 해결 전망
이 문제의 해결은 결국 일본정부가 전후 보상이라는 차원에서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된다는게 여론이다.
우토로 마을에서 만난 교또신문 후다마치 히로끼(二松啓紀) 기자는 『이렇게 비참한 상황을 일본인들조차 제대로 모른다』고 전제하고 『우리도 인권적 차원에서 방법을 찾겠지만 한국의 언론을 비롯한 국민들이 동포애를 발휘, 이 문제를 여론화 시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국 인권단체 협의회(회장=김승훈 신부)와 천주교 인권위원회(위원장=김형태 변호사)가 이국땅에서 자신들의 주거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이들을 7월13일 방문하고, 이들과 함께 연대 투쟁할 의사를 밝힘으로써 우토로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우토로마을 동네회는 이 마을 한겨레방(주민회관)에서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정부가 전후 배상차원에서 우토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앞으로 국내에서 우토로 지원의 폭을 넓히는 집회와 지원활동을 펼쳐나갈 것을 결의했다. 이들은 또한 우토로 문제를 국내에 알리고 서명운동과 함께 일본대사관 항의방문 등의 다각적인 활동을 펼쳐나갈 것으로 보여 앞으로 이 문제의 해결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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