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는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그들 가운데 있는 환자들을 고쳐 주셨다』(마태14,14)
선거 합동유세가 있는 날 많은 군중들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에 앉은 몇줄만이 열심히 듣고 있었고, 뒤에서는 끼리끼리 모여 담배를 피며 잡담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입후보자가 마이크에다 대고 격앙된 목소리로 박수를 유도하자 앞줄에서 열심히 듣고 있던 청중은 큰 소리로「옳소」하며 박수를 치고 입후보자의 이름을 연달아 합창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차례의 연사가 등단을 하자 앞에 앉았던 사람들이 일어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꼭 같은 형식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앞에 앉아서 열심히 듣던 사람들이 다 집으로 가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된 연설회는 시간이 갈수록 군중의 수가 점점 줄어들어서 마지막 입후보자가 연설할 때는 학교 운동장이 텅 비어 버렸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듣던 사람은 불과 몇 사람 안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형편이라면 합동 연설회는 의미가 없는 듯 했습니다. 합동 연설회의 취지는 아마도 투표자들이 여러 사람들의 정견을 듣고 비교하면서 자기가 투표할 사람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고 또 투표자의 입장에서는 개별연설을 찾아다니는 번거러움을 없애는 편의를 제공하는데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연설만 듣고 모두 가 버리면 본래의 취지가 의미없이 되는 것입니다.
앞줄에서 듣고 있던 청중들 중에는 입후보자가 무슨 얘기를 하며 인품은 어떤지 알고 싶어서 듣고 보러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각 후보의 소속 당원들과 지지자들 외에 많은 사람들은 돈을 받고 동원되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합동 연설회가 있는 날에는 건설현장의 인부들이 일당을 받고 동원되는 바람에 공사에 차질이 생긴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또 동원된 사람들은 동원한 측의 연설만 듣고 자리를 빠져 나가므로 다음 번 연설자의 김을 빼는 작전도 있다고 했습니다. 만일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동원된 사람보다 동원한 사람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후보는 해 놓고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그런 짓을 했을까? 동원된 사람들이 자기에게 투표하리라 생각한다면 이는 몰상식의 극치일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투표도 하지 않을 사람에게 일당을 주면서 동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역시「자기 과시」의 발로였습니다. 일회용 과시수단으로 동원 인력에게 일당을 지불한 것입니다. 이것은 벼락부자가 된 졸부들의 허세나 과소비와 같은 차원의 것 입니다. 그러나 일당을 받고 앉았다가 박수 몇 번 치고 고함 몇 번 지르고 그리고 일터에서 받을 수 있는 금액을 받은 사람들은 행운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입후보자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입후보자의 연설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일당을 챙기는 것으로 볼 일을 다 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모인 청중들도 그 구성을 보면 선거 유세장과 비슷합니다. 제자들이 당원들이라면 상당수는 예수의 지지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명성을 이미 듣고 어떤 인물인지 호기심에서 따라 나선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적을 한다니까 잘하면 병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찾아온 병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돈을 받고 동원된 사람은 아닐지라도 재수가 좋아서 병이라도 낫게 되기를 바라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높은 강단에서 설교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옹기종기 모인 무리들을 찾아 다니시며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셨고 거기 온 모든 사람을 누구나 할 것 없이 배불리 먹여주셨습니다.
『주님, 앞으로도 선거는 계속 있을 것입니다. 꼭 한 가지 청을 들어주십시오! 당원들이나 지지자들 뿐 아니라 동원된 청중들도 빵으로 배를 채울 능력은 있습니다. 그보다 더욱 불쌍한 사람들, 속은 비었지만 돈은 좀 벌어서 허세를 부리고 싶은 자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속을 좀 채워 주십시오. 그들은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불쌍한 상태인지도 모르는 참으로 측은한 사람들입니다. 아멘』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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