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1월 10일
慘漠(참막)한 싸움터에
쓰러진 敵(적)의 시체를 찾으면서
석양에 무덤 파 십자가 세워주는 그대의 모습이
마치 「미레… 」처럼 聖(성)스러이 그려집니다
정든 모든 것 다 버리고
異域里(이역만리)대양의(大洋)의 파도를 건너오신 그대에게
얼마나 敵(적)이 미웁고 불살라 버리고 싶었을까
허나「나는 北韓人(북한인)을 사랑합니다」
다만 共産主義(공산주의)를 미워할 따름이라고
쓰러진 敵(적)의 시체를 묻고
십자가 세워 기도드린 그대…
하략.
1950년 천주교회보 11월10일자 3면 귀퉁이에 한편의 시(詩)가 실렸다. 전선시첩(戰線詩帖)이라는 난으로 게재된 이 한편의 시는 1950년 한국전쟁 그 참상의 현황속에서 보면 전혀 새로운 정서를 보여주고 있어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으로 발발한 이 전쟁은 북한에 의해 도발된 동족상잔의 비극이었고 따라서 북한은 명백한 적으로 분류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당시 천주교회보에 나타나고 있는 대부분의 글들은 갑작스런 전란에 대한 분노가 곳곳에 담겨져 있고 그같은 분위기는 당연한 것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 특별히 교회가 직면한 고통과 아픔의 흔적이 너무도 컸고 적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 역시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바로 그때였다.
「나는 북한인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그 살벌한 시기에 이 시는 제목부터 당시의 정서를 반(反)하는 것이 분명했다. 정훈국 보도과 이용상이라는 이름으로 실린 시의 부제(副題)는 이렇게 붙어있다. 『쓰러진 적의 시체를 묻고 그 묘전(墓前)에 기도 하여준 전우(戰友)리차드 상사에게』
글쓴이에게 비친 리차드, 적의 시체를 수습하여 묻어주고 기도까지 해 주는 리차드라는 한 이방인 군인의 모습속에서 역시 군인임에 틀림없는 시의 저자는 한 인간에 대한 조건없는 사랑을 떠올렸던 것이 분명하듯 했다.
그로부터 50여 년 간 우리는 북한을 상대로는「사랑」이라는 용어를 거론하기 힘든 세월을 살았다. 축적된 아픔을 걸러내고 삭이는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져왔기 때문이었다.
최근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북녘 동포들을 우리의 식탁으로 초대하는 사랑의 국수나누기 운동을 선포하고 나섰다. 지난해의 수해로 배고픔이라는 최악의 고통을 겪고 있는 북녘의 동포들과 국수를 나눈다는 취지의 이 운동은 물론 아무런 조건이 전제되지 않는 순수한 사랑의 발로라 보야야 할 것이다.
남북 동포들이 하나가 되는 일은「언젠가는 해야 할」「그리고 누군가는 해야 할」우리 민족의 숙명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전화(戰禍)가 이 땅을 휘몰아치고 있던 그 살벌한 1950년 11월, 총칼을 마주한 적병의 시체를 묻어주고 십자가를 세워주며 기도하던 한 병사의 인류애적 초상(肖像)을 통해 사랑의 시(詩)를 남긴 한 병사의 용감한 시어(詩語)는 우리에게 무언의 교과서가 되어주고 있다.
5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 교회는 그 용감한 한 병사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재현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역사적 순간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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