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토착화를 위한 성사
2)신앙표현의 토착화인 성사(하)
성사는 또 그리스도론적 기능도 지니고 있다. 우선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안에서 우리와 함께 기도하시는 대사제이시다. 그분은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다. 교회 안에서 바쳐지는 공동기도 모두는 그리스도의 기도와 온갖 성사기도 및 전례에 의하여 유발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기도 분위기와 성사 안에서 당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당신의 승천 이전에 우리에게 당신 성령을 보내셨던 그러한 경우와 꼭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향하시는 것이다. 풀어 말하면 그분은 서품을 받은 사제라든지 교회가 필요로 해서 인준해준 그 어떤 성사 주례자의 말과 손을 통하여 갈릴래아에서 당신의 말씀을 듣던 이들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세례성사 안에서 나는 너에게 세례를 베풀고 너를 아버지 편에서 보실 때는 양자로 즉 종이신 주님 안에서의 종이자 아드님 안에서의 아들로 축별한다고 하시고, 견진성사 안에서 나는 너에게 견진을 베풀고 너에게 나의 생명을 충만케하며 맨 처음에 나의 교회에 강림하신 성령을 준다고 하시며, 고해성사 안에서 나는 간음한 여자와 베드로와 토마를 용서한 것처럼 나의 교회가 너를 받아들인 이상 너의 죄를 사한다고 하신다. 또 혼인성사 안에서 나는 혼인을 통한 너희의 일치를 받아들이며 이 순간부터 그 일치가 나의 몸인 교회와 이루는 나의 일치의 모상이 될 것이고 바로 그 일치에 하느님에 의해 새롭게 뽑힌 백성들 안에서의 빼어난 성덕을 베푼다고 하시고, 병자성사 안에서 나는 이 거룩한 도유로 너를 내 수난의 고통과 죽음에 결합시킨다 하시며, 신품성사 안에서 나는 너를 나의 사제로 서품하고 나의 양떼를 향하여 설교하며 그들을 인도하도록 그들을 축별하고 성화시키도록 파견한다고 하신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사들은 또한 종말론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세상살이에 너무 연연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 점이야말로 하나의 종교적 실체이자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상 한 가지 기본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성사행위를 넘어서서 그리고 그 행위를 통해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시기에 부활하신 주님 당신이 종말의 때에 출현하실 것이다. 종말은 이미 그분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 하느님 나라가 그분 안에서 건설되고 또 그분 안에서 이미 심판이 역사를 거쳐 내려져 왔으며 우리의 최종적인 구원이 이미 그분 안에서 현실적인 것이 되면서 쟁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을 표현하는 삶의 토착화를 더욱 폭 넓으면서도 구체적으로 그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들을 제안할 수 있겠다. 첫째, 시대와 지역 및 민족의 정신적 유산을 받아들이되 신앙의 내용과 본질을 변화시키지 않아야 한다. 둘째, 각각의 시대와 지역 및 민족의 고유하고 독특한 토착화 양상을 상호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이론과 실천 양면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원칙들은 단순히 포교적인 목적 하에 교회의 전통적인 요소와 지역이나 민족적인 요소를 적당히 혼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치 속에 다양성을 지닌 보편 교회로서의 특성 안에 포함되는 성사의 특성들을 살리는데 그 목적을 둔 것이다.
사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도 그리스도교 토착화 양상과 연관되는 내용으로 상기의 원칙들을 다음과 같이 재확인하였다. 『여러 종족과 민족의 훌륭한 유산은 이를 보호 육성한다. 또한 민족들이 풍습 중에 미신이나, 오류와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지 않는 것이면 무엇이나 호의를 가져 고려하고 할 수 있다면 잘 보존하고자 한다』(전례헌장 37항)『가톨릭교회는 각 부분 교회들의 의식 전통이 온전하게 보존되기를 바라며 자신의 생활양식도 시대와 장소의 요청에 적응시키려 한다』(동방교회에 관한 교령 2항)
어쨌든 그리스도교 토착화는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정도의 차이를 말할 필요가 없다. 신앙의 내용과 본질이 지켜지는 한에서의 토착화는 전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시대에 그 토착화가 비록 상황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어도 그래서 아쉬움은 있어도 기쁘게 할 수 있는 단계인 적응단계만이라도 철저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현대의 교부들이 강력하게 권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분들의 권고를 들어 보자. 『전통에 충실하면서… 필요하다면 건전한 전통의 정신을 따라 그 전부가 신중히 재검토 되고, 현대의 상황과 요구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갖추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한마디로 전반적인 그리스도교 토착화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성사의 토착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토착화된 신앙 표현인 성사의 실재야말로 그리스도교 토착화의 바탕이자 골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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