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솔뫼 마을에서
연꽃 한 송이
연못 속에 벙글고 있었다.
큰 주춧돌 하나,
사직 차츰 기우는
쑥대밭 속에 반짝이고 있었다.
아명은 재복
본명은 안드레아
김해 김씨
안경공파의 후손
증조부는 충청도 해미 감옥에서
순교한 김진후
아버지는 김제준
어머니는 고 우술라
태깔 소담스런 분청(粉靑)
분청의 하늘 트이고 있었다.
순교자의 핏줄을 이은
해맑은 울음소리,
조선의 아침 흔들고 있었다.
(배달순 작 「성 김대건 신부」중 「탄생의 빛과 소리」)
1821년 (순조21년) 8월21일 현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 자리하고 있는 솔뫼에서 김대건 신부는 태어났다.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성인과 어머니 고 우술라는 아들에게 아명(兒名)으로 재복(再福)이라 부르고 보명(譜名)으로 지식(芝殖)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또한 대건(大建)이란 이름은 성인의 관명(冠名)이다.
기자는 대건(大建)이라는 성인의 관명에 외람되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관명(冠名)은 전통적으로 조선 사회에서 만 15∼20세에 이르는 양반집 자제들에게 성인식을 치르면서 어른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뜻으로 새로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말한다.
주목할 것은 관명은 천주교에서 대부(代父)격인 「빈객」이 지어준다는 점이다.
기자는 이러한 전통적 관습에 착한, 과연 성인에게 「대건」이란 관명을 누가 지어주었을까 추리해 보았다.
가정(假定)은 여러 갈래로 추론할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당시가 아직 박해시기여서 김대건 일가가 숨어 살았고 몰락한 양반 집안이어서 격식을 갖춘 관례(冠禮)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모방 신부로부터 신학생으로 선발됐을 무렵인 1836년 4월경 관례를 받지 않았나 추리할 수 있다. 근거로 이때 김대건 성인의 나이가 만 15세가 되었고, 전통적으로 관례는 보통 정월이 아니면 4월이나 7월 초하루에 행해졌기 때문이다.
아니면 마카오 유학시절 페레올 주교나 신학교 교수 신부들이 「대건」이란 관명을 지어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가설은 상당 부분 취약한 점이 많다. 왜냐하면 관례는 유교의 전통적 풍습이고, 서양 선교사들이 서양 풍습에 따라 성인식을 하면서 굳이 조선식의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김대건 신부의 서한이나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도 모두 안드레아,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적고 있지 우리식 이름을 적지 않고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또 하나의 가정(假定)은 비록 24살이라는 늦은 나이이지만 부제서품을 받고, 서울에 입경할 당시인 1845년 1월경 관명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신학생들을 지도하고, 순교사록을 작성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기여서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의 어른으로 모신다는 취지에서 아명 대신 관명을 김대건 부제에게 지어주었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지 않았나 추정해 본다.
여하튼 관명을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취지로 받았건 대건(大建)이란 이름의 속 뜻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크다.
「크게 세운다」는 뜻의 성인의 관명은 김대건 신부가 이 땅에 새롭게 건설해 나가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준다.
대건(大建)은 부패한 사상과 학문, 종교로 무너져가는 조선 사회를 그리스도교 사상 위에 신앙으로 꽃피우고, 영원한 죽음과 멸망의 그늘 아래서 신음하는 겨레를 위해 영원한 생명의 전당을 세울 이름이었다.
대건(大建)! 이 얼마나 성인에게 적절한 이름인가!
솔뫼는 단순히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만이 아니다. 성인뿐 아니라 한국 천주교회 모든 신자들의 영신적 보금자리이다.
비록 7세 때 고향을 떠나 서울 청파동과 경기도 한덕동, 골배마실 등지로 이주하지만 솔뫼는 김대건 성인의 영원한 안식처였다.
『10년 교육보다 열달 태교가 더 중요하고, 이보다 수태전 부모들의 마음과 몸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옛 말이 있듯이 김대건 성인은 그의 원대한 사상과 불꽃같은 신앙심을 솔뫼에서 부모들로부터 물려받고 교육받았다.
한 마디로 성인의 모든 것이 솔뫼에서 이미 이루어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성지 솔뫼에는 김대건 신부 성상과 옛 생가터, 피정센터 등이 말끔하게 단장돼 있다.
성인의 생가터 한 켠에 자리잡았던 우물은 지금도 남아있다. 김대건 성인 일가가 타는 갈증을 이 우물가에서 해소했듯, 솔뫼 성지를 찾아오는 많은 순례객들이 영신적 목마름을 씻어 내리고 있다.
가톨릭신문 김대건 신부 순교 1백50주년 기념 기획 「님의 발자취 따라」취재에 협조해 주신 성베네딕도회 김상진 신부, 홍콩 한인천주교회 김원일 신부 및 신자 일동, 필리핀 마닐라 한인천주교회 주일학교 김 세시리아 교감, 새남터 익산 나바위 미리내 솔뫼 성지 주임신부 및 관계자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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