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강아지들도 그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마태 15, 27)
1951년 저물어가던 어느 추운 겨울 밤, 어머니는 세살 난 내 여동생을 들쳐업고 황급히 병원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새벽녘에야 돌아오셨는데, 도립병원 의사선생님은 동생이 「디프테리아」에 걸렸다고 했답니다.
어머니는 업고 온 딸을 방에 내려 누이면서 안도의 빛을 보였습니다. 쌔근쌔근 잠자고 있는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피곤도 잊은채 행복해 하고 신기해 하면서 『의사 선생님 의술이 참 좋다! 주사약이 참 좋다!』고 몇번씩이나 감탄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 뿐, 저녁때가 되자 또 다시 야단이 났습니다. 어머니께서 보니까 아이의 입이 한쪽으로 돌아갔고 아이를 안으니깐 몸이 축 늘어지더랍니다. 그래서 얼른 그 병원에 다시 데리고 갔는데 이번에는 「소아마비」라고 했습니다. 오른쪽 수족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용하다는 한의원이나 침술 의원이 있다면 지체할 수 없어서 밤중에라도 다녀와야만 했습니다. 그럭저럭 몇개월이 지나자 입은 어느 정도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수족은 전연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차츰 가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의원한테 가기만 하면 꾸중을 들어야 했습니다. 「왜 이제야 왔느냐?」 『아이가 이꼴이 되도록 무얼 했느냐?』
꾸지람과 야유를 들으면서도 어머니는 딸의 병만 낫게 해 준다면 고맙겠다고 여기고 다 참았지만 딸의 병은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의원들은 하나같이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고칠 수 있었는데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미니는 『불구자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노!』하는 말을 자주 하셨고, 이 시기에 나는 모성애의 숭고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마귀 들린 자기 딸의 치유를 위하여 예수 앞에서 보인 언행은 가히 비굴함 그 자체라 할 만 합니다. 예수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러 세상에 왔으므로 가나안 여인의 청을 들어주는 것은 마치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주는 것』과 같다고 함으로써 가나안 여인을 강아지 취급했습니다. 그래도 여인은 아랑곳 하지 않고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응수를 함으로 예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이 여인은 딸의 병만 낫는다면 자신의 자존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진한 모성애를 보여 줍니다.
대다수 지체 장애인의 부모들은 「성한 손가락보다 아픈 손가락에 더 신경을 쓰듯」몸이 불편한 자녀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돌봅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데도 그런 부모들의 사랑은 훨씬 더 숭고해 보이는 것은 왠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장애자 수용시설에 가보면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버림받은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장애인 부모가 된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부모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하기야 자기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별 수단을 다쓰며 피임을 하고 어쩌다 실패하면 가차없이 병원에 가서 지워 버리는 이 시대에, 임신 중에는 무슨 검사를 해서 아들이나 딸만을 골라 낳겠다는 이기적인 부모들이 수두룩하고, 장애아를 출산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한 듯 낙태수술을 해 버리는 요즈음 세태에, 지체 장애아나 복합 뇌성마비를 앓는 자녀를 둔 부모가 정성을 다해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오히려 더욱 빛을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교회 내에 낙태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 가면서, 나는 가끔 낙태아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왕 낙태의 경험이 있는 어머니들이 포기한 자녀를 위하여 미사만 봉헌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버림받아 복지시설에 수용된 지체장애 어린이를 자주 방문하고 돌봐주며, 가능하면 자기 자녀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하고…
어떤 이유로든 자기 자녀를 포기했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는 열심히 하겠지만, 또한 형편이 어렵더라도 포기한 자기 자녀를 다시 받아들이는 심정으로 역시 버림받은 아이에게 모성애를 발휘한다면, 그 아이를 위해서는 예수를 감동시키는 치유의 은총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의 희생을 통하여 드러나는 모성애가 더욱 숭고하고 향기롭게 빛을 발하는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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