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12월 23일
『초대 한국 주재 로마 교황사절(使節)패트릭 J 번(이하 방 주교)주교께서 이 전란의 희생으로 서거(逝去)하셨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방 주교의 서거를 추정한 교황청의 공식발표에 의하여 동(同)주교의 추도식일을 12월17일로 정하고 임시수도인 부산시의 대청동교회에서 고(故)방 주교의 추도식을 거행하였다』
1952년 12월23일자 천주교회보 1면을 장식한 것은 초대 주한 교황대사 방 주교의 서거를 알리는 기사였다. 「교황사절 방 주교 서거, 교황청에서 추정(推定)발표」라는 부제가 달린 이 기사는 같은 면에 바티칸 발 통신기사가 게재됨으로써 기사의 근거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당시 바티칸시는 포교성 대변인을 통해 한국 주재 교황사절 패트릭 번 주교의 서거에 대해 확실한 증거만은 없어도 그 확실성을 신빙할만한 정보와 보도는 있다고 성명을 발표했고 천주교회보는 그 보도를 인용, 방 주교의 서거를 확인했던 것이다. 포교성의 이 성명은 방 주교가 속해있는 미국 메리놀회 본부의 발표를 근거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었다.
방 주교의 서거는 납북 성직자 중 기적적으로 귀환한 토마스 퀸란(이하 구 주교)주교에 의해 확인됐다. 한국전란 당시 춘천교구장이었던 구 주교는 이른바 죽음의 행진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성직자였고 그는 납북 후 3년여 만에 귀환했으며 그를 통해 방 주교를 비롯 납북 성직자들의 생사가 확인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외신과 정보를 통해 추정되던 방 주교의 서거소식은 52년말 바티칸 발표후 근 5개월여 만에 확실한 사실로 판명되었던 것이다.
1949년에서부터 50년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가톨릭 성직자는 내ㆍ외국인을 포함 모두 1백30여 명이 체포, 투옥됐으며 53년 4월, 1차 석방시 포함된 성직 수도자는 겨우 6명에 불과하였다. 구 주교의 생환을 통해 방 주교와 모든 희생 성직 수도자들의 고귀한 죽음은 세상속으로 드러났지만 이들은 양을 버릴 수 없었던 바로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52년 12월23일자 천주교회보 기사는 양을 위해 생명을 바친 목자로서 그들의 희생적 선택을 증언하고 있다. 『1950년 6월27일 방 주교는 외국인 신부들과 수녀들에 빨리 남쪽으로 피하여 무모한 희생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자신은 피하시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신분으로서 피난 못하고 남이있는 신자를 위하여 남아 있어야 하는 한국인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정신적인 원조를 주며 지주가 되시겠다고 주검을 각오하셨다』
『목자가 도망하면 양떼는 흩어져 버릴 것이다』. 눈물로 같이 남하하기를 간청하는 이들에게 방 주교가 남긴 한마디였다. 방 주교는 7월11일 여벌의 옷도 준비할 겨를없이 경본(日課經)을 챙길 여유도 없이 황망히 체포되었으며 죽음의 행진끝에 그해 11월 25일 북한 공산당 수용소에서 폐렴으로 서거하고 말았던 것이다.
최근 한국교회의 외국 진출이 날로 확장되는 추세에 있다. 우리 동포를 위한 사목활동을 포함, 외국인들을 위한 선교활동이 교구나 수도회별로 점차 그 세가 커지고 있다.
세월은 변했지만 사목이나 선교활동에는 아직도 목숨이 위태로운 사태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른바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의 탈바꿈이라 불리우는 이 엄청난 변화의 물결속에서 우리 모두 한번쯤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렸던 착한 목자, 이들의 꿈과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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