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은총의 작용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또 그 사랑으로 일치하시어 그로 인한 생명을 확산시키시는 분이시라는 신앙의 내용이었는데 예수께서는 이 신앙의 내용을 사람들이 삶으로써 실천하도록 가르치셨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께서 먼저 사람을 사랑하신 것에 대해 응답할 것을 요구하셨는데 이유는 이중적이면서도 단 하나인 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만 하느님과 인간이 친교를 나누고 인격적인 일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은총이고 그 은총은 하느님의 일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신앙인은 누구나 은총으로 충만한 채이고 또 그 은총으로 인해서 생명을 누리며 해방되어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요컨대 은총은 구원의 비결인 셈이다. 그래서 신앙인은 비록 잘못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면서도 은총을 바라고 은총을 누리기 위해 쇄신작업을 부단히 계속해 나아가는 것이다.
2. 은총체험의 상태
은총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업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물이다. 특히 그 은총은 무한한 것일 뿐 아니라 심지어 죄가 많은 곳에 더 많이 넘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속성을 가진 은총이기에 불완전한 신앙인에게 삶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은총으로 인해서 신앙인은 전혀 새로운 체험들을 하게 된다. 그것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은총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삼위 하느님과의 사랑의 결합과 그 결과를 체험하게 한다. 하느님 자신이 은총이시고 은총이신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믿음을 가진 신앙인은 사랑이신 하느님에 의해서 그분 안에 머무는 까닭이다. 이렇게 하느님 안에 머물고 하느님께 속한 신앙인은 「행복」을 맛본다. 그 행복 체험이 바로 은총 체험인 것이다. 그런데 그 은총(행복) 체험은 평화, 휴식, 기쁨, 축복, 구원의 체험으로 표현될 수 있다. 하느님이야말로 「평화」와 「기쁨」, 「휴식」과 「축복」그리고 「구원」의 원천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은총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일을 충실히 해나가는 일꾼다운 체험을 하게한다. 사실 신앙인에게는 신앙인다운 「진실」과 「충실」이라는 덕행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덕행은 하느님에 의해서만 굳건해질 수 있다. 말하자면 하느님께 대한 굳은 마음으로 인해서 하느님으로부터 기인하는 진실과 충실을 더욱 굳건하게 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덕행의 표현이 바로 사랑이다. 즉 진실과 충실이란 그 사랑의 증거인 것이다. 그러기에 요한의 편지를 쓴 저자도 진실한 삶 충실한 삶이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느님의 은총으로 사랑하는 삶을 사는 신앙인은 결국 하느님의 일을 충실하게 해나가는 삶을 사는 것인데 그 모습은 구체적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삶 안에서 볼 수 있다. 하느님 안에 머무는 신앙인이 형제를 사랑하는 행위는 곧 하느님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이자 그분의 일을 해나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셋째, 은총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영원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신앙인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한 불완전하고 헛점으로 가득차 있다. 이 지상에서 하느님과 결합함으로써 체험한 행복이 결코 영원한 것은 아니다. 고귀한 그 체험 이후에 신앙인은 즉시 그 체험을 잊게 만들어 버릴만한 쓰라린 체험도 쉽게 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인은 또 다시 하느님과의 결합을 원하고 그 결합의 결과 누리는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리고 현실적으로 하느님 안에 있는 자답게 이웃 형제에 대한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그 행복을 확인하면서 그 행복이 영원한 것이기를 바란다. 그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다. 하느님은 인내의 은총을 신앙인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3. 맺음 말
결국 신앙인의 삶 자체는 은총에 의한 것이다. 신앙인은 은총 안에 불리웠고, 은총에 이르는 길을 신앙으로 살며, 그 은총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기에 그가 현재의 자기 자신이 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결국 은총 덕분인 것이다. 그래서 신앙인은 바로 그 은총으로 인해서 「행복」을 체험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체험한 그 행복을 다른 이들에게도 드러내 보여주며 살아간다. 그러기에 행복을 추구하고 체험한 그 행복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신앙인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모든 것이 은총이다」(죠르쥬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마지막 부분)라고 항구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 은총의 체험, 행복의 체험과 표현이 이 지상에서는 본성사인 교회와 그 교회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성사들을 통해서 혹은 성사로서의 삶을 통해서 가장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표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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