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마태 16, 15)
내가 만일 어떤 사람에게서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습니다. 나는 예수께 대해서 아는 것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들은 것도 많고 신학교에서 배운 것도 많고 외국에 가서까지 배웠으니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정리만 하는데도 며칠을 걸려야 할 지경입니다. 아마도 예수론을 강의하라고 해도 한 학기는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직접 나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동생활에서 공동시간을 알릴 때에는 종을 울립니다. 식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는 비교적 즐거운 음악이지만, 아침 기상을 알리는 종소리는 못 들었으면 행복할 것 같기만 합니다. 그러나 기상 종이 울리면 즉시 일어나서 바쁘게 움직여야지 그렇지 않고 잠깐이라도 꾸물대다가는 기도시간에 늦기 십상입니다. 그 날도 종소리를 듣자마자 즉시 일어나 바쁘게 세수하고 급히 수건을 힘껏 나꿔채는 순간에 무엇이 걸리는가 싶더니 세면대 앞 거울이 팍! 하고 방바닥에 떨어져서 박살이 나버렸습니다.
우선은 기도 시간이 바빠서 그냥 성당에 갔다가 나중에 아침식사까지 다 하고 바에 들어가 보니 용케도 거울이 틀 속에 그대로 깨어진 채 누워있었습니다. 깨어진 거울을 치우려고 다가가서 집어 드는 순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내 얼굴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지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나」임에 틀림이 없는데 거울에 비친 모습은 내가 아닐 뿐 아니라 찌그러지고 벌어지고 해서 흉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얼굴을 거울에 바싹 갖다 대고 비교적 큰 조각에 눈을 갖다 대고 자세히 보니 눈은 내 눈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의문이 풀렸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면 모두가 꼭 같아야 할 텐데 한 사람도 꼭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하느님은 어떻게 누구처럼 생긴 분일까?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하느님처럼 생겨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작은 인간은 깨어진 거울 조각과 같아서 크신 하느님을 한꺼번에 비출 수가 없습니다. 성인(聖人)쯤 되는 비교적 큰 거울 조각만이 그나마 자세히 보아야 하느님 얼굴의 한 부분을 제대로 비추어 줄 뿐입니다.
작은 거울 조각이 예수를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스스로 안다고 하는 것은 어떤 한 단편에 불과하고 그가 아는 모든 지식을 한데 모아 봐야 일그러진 예수의 모습일 뿐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남보다 많이 안다고 자부하고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인양 남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대단히 건방진 노릇일 것입니다. 그리고 많이 안다는 것이 크게 자랑거리가 되지도 못합니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 대해서 아는 것도 지식의 대상으로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삶의 대상으로 경험하는 예수라야 할 것입니다. 물론 삶의 체험이 모두가 다르므로 경험하는 예수도 다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각자는 예수의 어떤 부분을 삶을 통해서 비추어 주고 있습니다. 「크리스챤」은 그리스도를 반사하여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많은 말은 할 수는 있을지언정 사실은 나도 예수께 대해서 자신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말하는 대로 그리스도를 반사하며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나는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로 알고 있는 것처럼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바로 당신의 한 모습이요!』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표 나지는 않을지언정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한 부분을 비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안의 그 모습을 키워나가고 다른 사람 안에서 그 분 모습을 발견하려 자세히 관찰하며 살아간다면, 예수의 모습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백성들은 예수를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의 관심은 제자들과 백성이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