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하나의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예정되어 있는 섭리와도 같은 것이다. 그것이 선교사나 다른 지역의 신자에 의해 전파된 것이건, 아니면 그 지역 사람이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받아들여 와서 전파한 것이건 우연으로만 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양 홍씨 양반 집안
경기도 포천 지역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위의 두 가지 경로 중에서도 후자에 속하는데, 그 주역이 바로 홍교만(洪敎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과 그의 아들 홍인(洪, 레오)이었다.
남양 홍씨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홍교만은 기호남인에 속하는 학자로, 양근의 유명한 신자 집안이던 권일신(프란치스코 사베리오) 형제의 외숙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장차 벼슬길에 올라 집안의 명예를 이어나가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본성이 점잖고 사려 깊은 탓에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생애에 커다란 전기가 마련되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진리의 종교를 알게 된 결과였다.
홍교만과 아들 홍인은 친척인 권씨 집안을 오가는 동안 거의 같은 시기에 천주교 교리에 대해 듣게 되었다. 이때 아들은 즉시 이를 받아들여 영세 입교하였으며, 이전부터 꿈꾸어 오던 인간적인 명예를 버리고 오직 하느님을 섬기고 그 교리를 전하는 데만 열심하게 되었다. 온순하고 겸손하며, 조용한 그의 성품 또한 신심 함양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반면에 부친인 홍교만은 처음부터 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으니, 복음의 가르침이 오랫동안 몸에 밴 윤리나 학문 내용과 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들이 자세히 설명해 준 교리에서 진리를 발견하고는 주저하는 마음을 버리고 신앙의 끈에 자신을 붙들어맨 뒤 열심히 실천해가기 시작하였다.
쉼없는 복음전파
그 후 홍교만은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뵙고는 세례를 받았다. 또 그의 딸을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인 정철상(가롤로)과 혼인시킴으로써 양근 정씨 집안과도 사돈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가벼운 즐거움이나 수많은 외교인 친구들과의 교제를 끊고, 이런데서 오는 비난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였다.
그 부자는 이제 이웃과 친척들에게 열심히 교리를 전하였고, 냉담 교우들을 격려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집에 모인 그 지방 교우들을 권면하기 위하여 여러 날 밤을 지치지 않고 강론하는 데 보냈다. 이렇게 하여 포천의 한 고을이 신앙 공동체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신자로서 이름이 있게 되었으므로 그들 부자는 1801년의 박해령이 선포되자마자 체포자의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이에 그들은 집을 떠나 며칠 동안 숨어 있었으나, 오랫동안 박해의 손길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집으로 가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사실 그때에는 이미 포졸들이 그들 부자의 거처를 수소문하고 있던 중이었고, 따라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체포되고 말았다.
서울로 압송된 홍교만은 곧 의금부에 갇히게 되었으나, 아들 레오는 다시 포천으로 이송되었다. 이후 홍교만은 여러 차례 문초를 받으면서도 교리와 경전의 가르침을 내세워 천주교가 결코 사악한 학문이 아님을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박해자들까지도 『그의 신심은 목석보다 강하였고, 어떠한 형벌도 이를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종교를 위해 죽을지언정 이를 버릴 수는 없다고 단호히 말하였습니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렇게 하여 포천의 위대한 사도는 사형 판결을 받고 2월26일(양력 4월 8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부친의 용감한 순교는 멀리 떨어져 있던 아들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레오는 자주 형벌과 문초를 당하는 가운데서도 오로지 부친의 뒤를 따르겠다는 생각만을 하였다.
“「사학」아니다”강조
10개월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받은 형벌로 인해 그의 몸은 헤어질대로 헤어졌지만, 오히려 그의 용기는 포졸들까지 감탄시킬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가 마친내 사형 판결을 받고 참수를 당하였으니, 그때가 12월 27일(양력 1802년 1월 30일)로, 그의 나이는 44세였다.
그가 순교한 뒤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남을 보게 되었는데, 며칠 동안 시신이 살아움직이는 것과 같았고, 그 둘레에는 밝은 빛이 둘러져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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