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자신의 공동체에 새로운 인물로서 상당 기간 준비를 해 온 이들을 인도하고 받아들일 필요를 느꼈을 때 그 새로운 인물들을 자신의 공동체의 결합시키는 일종의 의식을 수행했다. 그 의식이 바로 세례식이었다. 그러므로 이 세례식의 의의는 애초에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가입하는 것을 뜻하는 의식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추후 비록 「가입식」이라는 뜻이 약간은 남아있긴 했으나 세례식의 의의에 대해 대체로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원죄신학의 발전으로 「죄를 없애 줌」, 「천국으로 향하게 해 줌」, 「허물을 씻어 줌」 등이 세례식의 의의로 알아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이런 의의가 바로 세례식의 의미라고 이해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식의 이해나 설명은 세례를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알아듣도록 조장하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좀 더 폭넓은 세례관을 통해서 구원이라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게 해 줄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폭넓은 세례관은 인간실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세례받은 사람이 그 의미로 인해서 변형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기에 여지껏 해왔던 이해나 설명방식이 안고 있는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성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세례를 통해서 체험되는 은총이자 세례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은총의 속성 때문이다.
1. 인간실체의 의미를 변형시키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의 입문
세례에 관해서 기본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성서의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직접 행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급이 되고 있는 구절들로 요한복음 3, 22∼23과 4, 1∼3이 있고 구원을 위한 세례의 필요성을 말씀하시면서(마르 16, 16)제자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명하신 내용이 마태오복음 28, 19에 있으며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스승의 사건에 관한 소식을 선포하게 되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다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인 사도행전 2, 37∼41; 8, 12∼13. 35∼38; 9, 17∼18; 10, 44∼48; 16, 29∼33; 19, 1∼6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자료들은 한결같이 인간 실체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밝혀주는 변형된 의미의 확인과 함께 세례가 행해졌음을 밝혀주고 있다. 세례야말로 인간실체의 의미변형을 실현시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구원(해방과 생명)을 체험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달리 말해서 세례를 통하여 구원의 비결로 주어진 은총 덕분이 아니던가?
1) 과정으로서의 입문
인간은 본래 집단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성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의 집단이나 무리라 일컬어지는 사회에 일원으로 살아가지 않는 인간이란 없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무리 혹은 사회적 집단이 가정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사실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
인간은 가정을 출발점으로 해서 세상 안에 있는 그 어느 무리나 사회적 집단에 들고 그 구성원이 되기 위한 장기간 동안의 과정을 밟는다. 그러나 출생이 입문과정의 첫 번째 단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첫 단계가 곧 완전한 입문과정은 아니다. 출생한 아이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것이고 또 그 성장을 위해 가정으로부터 제반 자양분을 공급받기 마련이며 가족들의 훈육과 지도를 받는다. 그렇게 하는 일의 목적은 새로운 구성원이 비록 그 가정 자체는 아니지만 그 가정의 일원으로서 가정을 대표하고 가정의 정체와 삶을 철저하게 드러내는, 있는 그대로의 인격으로 성숙시키는데 있다. 말하자면 그 가정의 상징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목적에 합목적적인 작업을 수행하면서 새로운 구성원이 자신의 신원을 정립하고 그 신원에 알맞는 삶을 살아가는 중에 정점으로 여길 수 있는 체험의 기회를 가정이 마련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입문식들인 것이다.
입문식들은 그 종류도 다양하고 기회도 많다. 예로써 백일잔치, 돌잔치, 입학잔치, 졸업잔치, 제반 송별잔치, 생일잔치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요컨대 인간은 그 누구이든 어떠한 무리나 사회집단에 들게 되어 있고 그 사회의 대표이자 인격적 상징이기 위해 그 사회에 맨 처음 들 때부터 시작해서 모습을 달리 하면서 마련되는 제반 입문의 과정을 밟게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이 그리스도교 세례식에도 꼭 들어맞는다. 세례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의 입문과정의 하나다. 세례는 한 인간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대표이자 하나의 인격적 상징이 되어가는 첫 번째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세례는 애초부터 결코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격을 지니는 의식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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