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 23)
베드로가 무슨 말을 잘못한 것 같긴 한데, 「사탄」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좀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대답하니까, 예수님은 『시몬 바르 요나, 그대는 복됩니다!』하셨는데, 어째서 금방 『사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학교 게시판에 세미나 제목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내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는데, 곧 「마귀에 대하여」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재미가 있을 것 같았으며, 실제로 재미있었습니다. 한 가지를 소개하면, 유고슬라비아 신부가 마귀의 실체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말을 하면서 이런 내용의 발표도 했습니다. 『마귀는 위격(PERSONA)이 아니다. 어떤 능력(POTENTIA)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실체를 드러낼 수 없고 반드시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붙어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 뱀, 돼지 등등』
그리고 『영화 「엑소시스트(EXORCIST)」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현상들, 여자가 남자 목소리를 내고, 몸이 공중으로 올라가고, 이상한 물질을 입에서 토해내고… 이러한 현상만으로 「마귀들었다」고 할 수 없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자 폴란드 신부가 질문을 했습니다. 『능력(POTENTIA)이라면 실체(REALITAS)가 아니라는 말인데, 그러면 「마귀는 없다」는 말이 아닌가?』그러자 유고 신부는 『마귀는 있다. 인간의 영혼이 육체에 붙어있어야만 능력을 발휘하는데 아무도 영혼이 없다는 사람은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폴란드 신부는 『그러면 「마귀가 있다」면 「마귀들었다」는 표시가 나야 할 것이 아닌가? 당신은 사람에게 어떤 현상이 생기면 「마귀들었다」고 하겠는가?』하고 물었습니다.
유고 신부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세상에 죄가 시작된 것은 마귀로부터 시작되었고, 죄의 뿌리는 바로 「교만」이었다. 따라서 대단히 교만한 사람은 마귀든 사람이다. 예를 들어 「히틀러 같은 사람」이다』라고 대답하자, 모두가 웃었습니다. 그리고 지도 교수가 몇 가지 보충을 하고 그 시간은 끝났습니다.
그 후 『교만한 사람은 마귀든 사람이다』라는 말이 영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소위 칠죄종이라는 죄의 7가지 근본(교만, 인색, 색정, 분노, 탐욕, 질투, 게으름)에 습관적으로 빠져있는 사람은 마귀든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어떤 중죄나 악습에 습관적으로 빠져있다는 것은 그 죄의 지배하에 놓여있다는 것이며 죄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것이 곧 마귀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귀의 능력이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게으름이 왜 여기 끼어들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게으름의 찬양」이라는 책도 있지만, 게으름을 즐기는 것은 내게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행복인데, 이것은 빼면 좋겠습니다. 초가을 따가운 햇살을 피해서 약하게 에어컨을 틀어놓고 태산 같은 할 일들을 누구에게 맡기거나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아 놓고 미룬 채 편안한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다가 깜빡 한잠 자는 맛은 세상의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게으름의 즐김인데…. 그래서 오늘 복음을 다시 보니까 7죄종이 문제가 아니라 마귀든 것은 하느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으로 이들은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 것은 예수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하느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세상일에만 골몰해 있으면 그는 세상을 지배하는 악의 세력에서 헤쳐 나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악의 세력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오늘 복음에서도 『사탄아, 물러가라』하신 것은 베드로를 향하여 말했지만 악의 세력을 향한 말씀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래도 악의 세력에 잡혀있는 사람이 베드로였기에, 혹시 나도 마귀든 사람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내가 습관적으로 잘못하는 것은 없는지? 하느님의 뜻에 신뢰하는 마음 없이 내 뜻대로 이끌어 가려하고 세상일에만 골몰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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