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격적 결단의 필요성
진즉 살펴본 것처럼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거룩한 상징이다. 이 말을 아우구스티누스의 표현을 빌려 옮기면 그리스도인 공동체로서의 교회야말로 성사인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사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상적 삶과 태도를 그대로 이어받는 가운데 그것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지금은 신비 자체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지상적인 것 모두를 재현시키는 공동체인 것이다.
여타의 것을 언급할 필요 없이 동시대 사람들을 대하시던 예수님의 태도만을 본다면 그분의 태도가 얼마나 개방적인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분은 당신이 누구신지, 무엇을 해야 할 분이신지 사람들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행동하셨다. 그렇게 하실 때 어떤 특정의 대상들만을 골라서 한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빈부고하, 선악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아무 거리낌 없이 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이러한 태도 앞에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그분의 초대에 응해서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이 누구신지, 무엇을 하는 분이신지 체험을 했던 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그분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가능한 한 꼬투리를 잡아 훼방을 놓거나 고발하려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체험할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이들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말해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곧 「개방적인 초대 앞에서의 응답 여부」, 「결단 여부 」인 것이다.
결국 초대받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결단을 내리느냐 거부하느냐」 일 뿐이다. 거부한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있는 것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은 지속적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마지막 날까지 열린 성사로서 있고 그 성사로서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발휘한다. 그러므로 초대받은 사람의 처지로서는 초대에 응하고자 결단을 내릴 경우 「왜?」인지만을 확실하게 해두면 된다. 바로 그 「왜?」라는 것이 금후 결코 배타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이지 않은 그리스도인, 점차 성숙해 가는 그리스도인, 그가 가입한 열린 공동체의 대표이자 한 상징으로서 그 공동체를 드러내는 일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주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것은 곧 스스로 내린 인격적 결단에 상응한 변형된 인간 실체의 의미를 폭넓게 드러내며 책임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근거인 것이다.
2. 첫 단계 입문과정의 의의
1) 공동체의 정체를 나눔으로써 자기 존재의 의미를 구현함
상당한 준비 기간을 통해서 터득하게 되는 것 가운데 한 가지는 공동체의 정체에 관한 것이다. 예수께서 누구신지, 그분의 사건이 어떤 것이었는지 체험한 첫 번째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예수께서 불러 모으신 자신들이야말로 뽑힌 백성 즉 「하느님 백성」으로 확신했다(로마 11장 참조). 그들은 눈에 보이고 서로 만지며 서로 느끼는 사람들 무리일 뿐인데 바로 그 무리인 자신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뽑혀서 형성된 무리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 안에서 궁금한 것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 곧 교회는 「신비체」이자 「하느님 백성」이다. 신비체라는 것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백성」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또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무리이다. 따라서 그 「하느님 백성」이 「신비체」를 볼 수 있게 해주고 만질 수 있게 해주며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한 마디로 하느님 백성인 사람들 무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신비체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 백성이라는 외적인 면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내적인 면으로 되어 있는 그 실재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그 실재는 신성한 표상 즉 성사인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정체이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교회를 있게 해주고 생활하게 해주는 힘은 그 교회의 영이신 「성령」(요한 7,38~39참조)이시다.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바로 이 성령께서 교회에 생명을 불어 넣으시는 힘이시고 또 교회가 하나의 인격 존재일 수 있도록 해주시는 능력이시다. 교회는 성령의 내재와 성령의 활동에 의해서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성령에 의존한 구원의 실재로 현존한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가입하고자 하는 예비자는 준비하는 기간 동안 위와 같은 교회의 정체를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정체의 파악만으로는 그 공동체와 일치하여 정체의 몫을 나누겠다는 결단을 내리기에는 모자란 점이 있을 수 있다. 교회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행하는지, 달리 말해서 존재의 이유와 그 실현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