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투석실에 들어섰을 때 ‘빨간 실의 인연’ 이야기가 떠올랐다. 태어날 때부터 새끼손가락에 빨간 실을 묶고, 그 끝을 인연인 사람에게 묶어 놓는다는 전설이다. 투명한 관은 들어오고 나가는 혈액으로 인해 붉어져 마치 빨간 실처럼 보였다.
그 인연의 끝이 꼭 맞는 신장을 가진 사람과 닿아있기를 로만 마리오(43)씨는 기도한다. 비좁은 컨테이너 안에서 어렵게 생활하며 아끼고 아낀 100만 원가량의 돈을 매달 집으로 부치던 그였다. 필리핀에는 아내와 사랑하는 세 아이가 있다.
2년 전부터 통풍을 앓던 그는 인근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와 통증을 완화시키는 약만 복용했다. 약으로 버티며 공장에서 과중한 업무를 이어가던 그는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의사는 그에게 위출혈과 신장수치가 급격히 저하됐음을 말했다.
현재 그의 신장은 단 5%만 살아있는 상태다. 임시방편으로 관을 삽입해 투석을 받지만 동정맥류 수술을 해야 하고 맞는 신장을 찾을 때까지 투석을 계속해야 한다. 만성신부전증을 넘은 말기신부전증이었던 것이다.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수원 필리핀공동체의 시름도 깊어간다. 공동체 회장직을 맡아 매주 미사도 거르지 않고 공동체 동료들과 찬양 노래를 불렀던 사람, 한국에 처음 온 필리핀 사람을 따뜻이 맞아주었던 사람이 로만 마리오씨였기 때문이다.
부활과 성탄 전 동료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해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주일마다 동료들을 성당에 실어주고 공동체를 다잡아갔던 그였다. 그가 없는 필리핀공동체는 지금 망연자실한 상태다.
“아내가 제 병을 알면 많이 슬퍼할 거예요. 저 일 엄청 많이 했습니다. 제가 아이 때 너무 가난했기에 제 아이들은 그렇게 키우기 싫어서 정말 많이 일했어요. 제 병을 고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기력이 없는 목소리에 귀를 가까이 대야했다. 속삭이는 목소리가 멎어 얼굴을 바라보니 눈물이 맺혔다가 툭하고 떨어진다. 고된 일을 하느라 건강을 내어주고, 가족을 위해 살겠다는 희망 한 자락 잡고 있는 그의 이름은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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