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거기 그들 가운데 나도 있습니다』(마태 18, 20)
어떤 개신교 신자 몇 분이 우리 수도원에 와서 개인 피정을 하겠으니 손님의 집에 방을 좀 마련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손님의 집에는 주로 수녀님들을 위하여 마련한 곳이므로 곤란하고 우리가 초청한 손님도 아니며 더구나 가톨릭 신자도 아닌데 수도원 손님의 집에서 개인피정을 한다는 것이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대답을 했더니, 왜 그렇게 폐쇄적이냐며 나무랐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옛날에 가톨릭 신자였는데 지금은 개신교에 다닌다고 하면서 자기도 영세한 신자라면서 세례명까지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괘씸한 느낌이 들어서 더욱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가톨릭을 떠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이런 소리를 하는가 싶기도 하고, 손님의 집은 사실 어디 갈 곳이 마땅찮은 수녀들이 별 부담 없이 며칠 기도하며 쉬고 가는 집으로 마련한 것이며 때때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신자들에게도 개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곳을 이용할 수 있는 남자들이 구태여 종교도 다른 우리 수도원에 오겠다는 것은, 이들이 이곳을 조용하고 값싼 모임장소로 여기는 것 같아서 싫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들이 여기 와서 피정 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을 말했더니, 전화에다 대고 자기를 무시한다고 「이놈, 저놈」하고 말을 막하면서 『피정이라는 것이 너희 독점물이냐? 우리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느냐?』 그리고 『그 집이 어디 네 개인의 집이냐? 하나님의 집을 하나님의 종이 찾아가지 못하게 하느냐? 』고 꾸지람을 했습니다. 나도 울화가 치밀어서 같이 욕하고 싶었지만 참아야 한다고 나 자신을 계속 다짐하면서 끝까지 공손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안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에 대하여 하느님 앞에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3,40분 이상 전화 통화를 한 것 같았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장거리 통화료를 물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내 추측이 맞은 것 같았습니다. 돈을 그렇게 챙기는 사람이라 그들이 틀림없이 값싸게 자기들의 모임을 할 작정이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것도 내가 물어줄 성질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자기가 미사도 하고 전화료도 받을 겸, 다음 주일에 수도원에 오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입니다』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생각할수록 분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혼났습니다. 그리고 주일 날 만나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되고 큰 소리로 다투게 될까 봐 겁도 났습니다. 주일이 되어 여러 신자들 가운데 어느 분이 그 사람인가 찾아도 가려낼 수가 없었으며, 그날 아무도 나를 만나자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는 상당히 오랫동안 그들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생각에 꽉 잡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개신교로 갔다는 것 때문에 부정적인 느낌이 들어서 그들의 요구를 더욱 들어 줄 수 없었고 나중에 내게 마구 욕을 할 때에는 들어주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석연찮은 찌꺼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곳은 『하느님의 집이다』라는 말이 계속해서 귓전을 울렸습니다. 그들이 어떤 성격의 모임이라 하더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으면 거기 예수님이 계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집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의 집입니다. 만일 지금 똑같은 사정이 생긴다면, 보다 넓은 마음으로 그들을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 선입관 속에는 비록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다 하더라도 이것은 이단이며 내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단지 변절자에게 이용당하는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꼭 손님의 집이 아니더라도 다른 장소를 마련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누구나 「둘이나 셋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기만 하면 거기에 예수님이 계신다」고 하신 말씀을 나는 마치 그 모임이 내 허락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처럼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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