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입니다』(마태18,35)
나는「용서」라는 말을 놓고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진실로 완전한 용서가 가능한 것인가? 올 여름 하루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하루 종일 누워있었습니다. 날씨는 35~36도를 오르내리고 선풍기 바람마저 더위를 내뿜는데 땀이나서 온 몸은 끈적거렸습니다. 그러다가 비몽사몽간에 이미 돌아가신 어떤 신부님에 대한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도 날씨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정확하게는 1968년 여름방학이었고 내가 병원에 입원하여 내일은 코 수술을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여름 공동병실에는 열기가 도를 넘고 있었습니다.
한데 그분이 보시기에 나의 사제성소가 위태롭다고 판단하신 듯 했습니다. 그래서 저녁 늦게 찾아 오셔서 여러가지 주변의 어려운 얘기들을 하시면서 뜸을 들이시는데 미련한 나는 그저 병문안에 감사하는 마음 뿐 그분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더니, 나중에 말씀하시는 뜻이 그게 아니었습니다. 신부가 안 될 양이면 가난한 수도원에 병원비를 떠넘길 것 없이 지금이라도 수술을 포기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도 기가 차서 더 이상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수술을 하고, 그 이후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왔지만 그날의 기억을 지울 수 없었으며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도 사무적으로 만날 때 외에는 만나면 인사할 정도로만 지냈으며 그분이 돌아가셔도 그냥 무덤덤하게 장례미사에만 참례했습니다.
나는 그 기억 자체를 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때의 사건이 기억에 떠오르고 또 곰곰이 생각하니 그때의 감정까지도 새록새록 되살아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다 잊었다고 치고 살았던 사건들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뇌리 속에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상처받은 감정마저도 그대로인 듯 합니다. 물론 그분 입장에서 나에게 용서 청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깊은 상처를 받았고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지닌 채라면 받은 상처에 대해서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어떻게 할 방법도 없는데, 또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정리되고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것처럼 여기고 있었는데, 『새로이 기억에 생생하게 떠오르고 감정이 되살아나고 이런 것들은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데, 이때도 나에게 윤리적인 책임이 있는 것일까? 용서하고 화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면 나는 영원히 화해의 기회를 놓친 것일까? 「용서」란 기억에서부터도 사라져야만 하는 것인가? 기억을 하더라도 감정은 이미 정리가 돼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디까지가 진정한 용서인가? 모든 감정을 덮어둔 채 외면하고 살 수는 없지 않는가? 오늘 복음에서도「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그와 같이 하실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용서」라는 것이 기억에서 사라지고 아무런 감정도 안 생기게 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하늘의 아버지」께 받을 책벌이 큰 일입니다. 아무래도 「용서」란 그 일이 생각날 때 마다「다시 결심하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한 사건에서 한 번씩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건을 놓고도「일흔 번에 일곱 번까지라도」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내가「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곧 주님이 나에게 베푸시는 은총과 자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실로 내가 주님께 불충했던 지난날의 수많은 잘못들에 대하여 주님은 나에게 뚜렷한 책벌 없이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당한 이 죄인을 주위의 의로운 형제들과 더불어 차별 없이 교분을 나누며 살게 해 주십니다.
「용서」의 본뜻은 기억과 상처를 지워 버리는 것이 아니라, 형제가 나에게 준 상처를 기억할 때마다 내가 주님께 끼친 배은망덕을 생각하고 과거의 아픈 상처가 되살아날 때에는 주님이 나로 인한 상처의 아픔이라 여기고 형제가 내게 끼친 상처를「용서하기로 결심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사건의 기억과 상처의 아픔은 진정한 용서를 위하여 꼭 필요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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