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는 대략 3단계로 진행되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단계는 1801년 1월 10일 (음력) 공식적인 박해령이 내려지기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이것이 박해 초기로 이어졌다. 박해의 두 번째 양상은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3월12일 의금부에 자수하여 4월19일에 순교함으로써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소년 신앙인’으로 성장
주문모 신부의 순교에 앞서 형조에서는 옥에 갇혀 있던 나머지 6명의 교우들에 대해서도 마지막 문초를 끝내고 처형을 결정하였다.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최필제(베드로), 정인혁(타대오), 윤운혜(마르타)도 이때 순교하였으며, 세례명을 알 수 없는 이합규, 순교한 사실은 여러 기록에 나타나 있지만 자세한 행적을 알 수 없는 정복혜(鄭福惠, 간디다), 그리고 이제 소개할 정철상(丁哲祥, 가롤로) 등이 그들의 동료였다.
정철상 가롤로는 명도회장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장남으로 양근 땅 마재(馬峴)의 유명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생모가 일찍 사망하였으므로 양어머니인 유 세실리아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게 되었으니, 정하상(바오로)성인과 정정혜(엘리사벳) 성녀는 바로 그의 이복동생이 되는 셈이다.
가롤로는 열 살이 좀 넘어서 부친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소년 신앙인으로 자라게 되었다. 이른바「부전자습」(父傳子習)이라는 가족 신앙이었다. 그러므로 부친의 열심은 언제나 그의 모범이 되었으며, 그는 스스로 교회의 본분을 지키는 법을 알고 또 이를 실천해 나가는 단련을 받았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세속의 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는 이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하며,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며, 자기 영혼을 구제하는 일에만 정성을 다하였다.
신앙으로 ‘고통’ 극복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자 그는 순방차 양근에 들린 신부로부터 여러 차례 성사를 받았고, 스스로 서울로 올라가 신부를 찾아뵙곤 하였다. 또 집안 어른들이 신부의 거처를 관가에 고발하고 천주교 신앙을 버리라고 하면서, 또 집안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송곳으로 찌르자 오히려 그들을 설득시키기까지 하였다.
그러던 중 1800년에 양근 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부친을 따라 서울로 이주하여 생활하였는데, 그의 열성은 이때부터 더욱 빛나게 되었다.
서울로 이주한 이듬해 초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부친과 삼촌 정약용(요한)은 이름이 이미 널리 알려진 탓에 일찍 체포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다. 당시 가롤로의 나이는 20세 정도였고, 부인과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때부터 옥으로 부친과 삼촌을 찾아다니며 뒷바라지를 하던 그는 관리들에게 갖가지 회유를 받아야만 하였다. 관리들은 때때로 그의 마음을 되돌려 보려고 그 앞에서 부친과 삼촌에게 더욱 혹독한 형벌을 가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주 신부의 거처를 대거나 교회의 일들을 자세히 말하면 부친이 풀려날 수도 있었으나, 그는 이러한 시련들을 신앙으로 이겨냈다. 그리고 2월 26일 부친이 순교하던 바로 그날 의금부의 명령으로 체포되고 말았다.
형조에서 문초를 받는 동안 그는 이미 순교한 교우들의 이름을 댔을 뿐 다른 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또 한 달 남짓 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의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짚신을 삼아야 했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이 일을 전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훗날 그의 순교를 증언하는 교우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말을 전하였다. 『배교하라는 형벌과 문초에도 그의 신앙은 결코 약해지지 않았으며, 오직 부친의 뒤를 따르고, 그분과 같이 천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항구만 마음을 드러낼 뿐이었다』
마침내 마지막 문초를 당하고 사형 판결이 나자, 그는 동료들과 함께 태연히 형장으로 나가 기쁜 마음으로 망나니에게 목을 내밀었으니, 그때가 1801년 4월2일(양력5월14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기록에도 그 처형 장소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그 장소를 서소문(西小門)밖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서울에서 법 절차에 따라 죄인을 처형하는 장소가 바로 사직단(지금의 사직 공원)왼쪽에 있던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1801년 순교
가롤로가 순교한 뒤 집안 식구들은 시체를 거두어 부친의 시신과 함께 고향인 마재 뒷산에 장사지냈다. 그러나 이후부터 양어머니 세실리아와 어린 자녀들, 그리고 가롤로의 미망인과 아들은 오랫동안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만 하였다.
순교자의 후손으로서 또 다른 순교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그들에게 남은 것은 더 굳은 믿음,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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